HBM·GPU·파운드리·전력망으로 번진 수익 경쟁, 한국 제조업의 기회와 비용

[이재명정부 정책 분석②] HBM 호황의 역설, 반도체 강국과 AI 강국 사이/사진=@NVIDIANetworkng. skhynix_official.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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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tN 최기형기자]올해 1분기 세계 반도체 매출은 2985억 달러였다. 3월 한 달 매출은 995억 달러로, 전년 같은 달보다 79.2% 늘었다. 미국반도체산업협회(SIA)는 세계 반도체 매출이 2026년 1조 달러에 이를 흐름이라고 밝혔다. AI 골드러시의 두 번째 돈줄은 모델을 만드는 기업만이 아니라, 모델을 돌리는 반도체와 전력, 데이터센터, 장비 공급망으로 옮겨붙고 있다.

19세기 캘리포니아 골드러시에서 안정적으로 돈을 번 쪽은 금을 캔 사람만이 아니었다. 광산으로 가는 길을 놓은 운송업자, 장비를 판 상인, 돈을 맡기고 빌려준 은행, 숙박과 식료품을 공급한 사업자도 금광 주변에서 커졌다. 2020년대 AI 골드러시에서도 같은 구조가 되풀이되고 있다. 생성형 AI 모델 기업이 앞에 서 있지만, 막대한 연산을 떠받치는 반도체와 서버, 냉각장비, 전력망, 데이터센터가 뒤에서 더 큰 산업 지도를 만들고 있다.

샌프란시스코와 베이 지역으로 몰린 자본은 먼저 AI 소프트웨어와 서비스 기업에 붙었다. 맥킨지는 2019년부터 2025년까지 샌프란시스코가 확보한 AI 소프트웨어·서비스 투자액을 약 3750억 달러로 제시했다. 같은 기간 클라우드 서비스 674억 달러, 사이버보안 103억 달러, 자율주행차 194억 달러, 로보틱스 161억 달러보다 훨씬 큰 규모다. AI 골드러시의 초반 자금은 모델과 서비스 기업을 중심으로 움직였지만, 그 돈이 실제로 쓰이는 곳은 GPU, 메모리, 데이터센터, 전력 인프라로 넓어지고 있다.

AI 모델은 스스로 돈을 벌지 않는다. 학습과 추론에 필요한 연산 자원이 있어야 하고, 연산 자원을 감당할 서버와 전력, 냉각설비가 따라와야 한다. 대형언어모델과 이미지·영상 생성 모델이 커질수록 그래픽처리장치(GPU), 고대역폭메모리(HBM), 첨단 패키징, 파운드리 생산능력의 가치가 함께 오른다. AI 서비스 사용량이 늘어날수록 전기요금, 데이터센터 입지, 송전망, 냉각수, 운영비도 기업의 비용 구조 안으로 들어온다.

세계 반도체 시장의 회복은 AI 수요와 맞물려 속도가 빨라졌다. SIA는 2026년 1분기 세계 반도체 매출이 직전 분기보다 25% 증가했다고 밝혔다. 3월 매출은 전월보다도 11.5% 늘었다. 지역별로는 아시아·태평양과 미주, 중국, 유럽, 일본 모두 전년 대비 증가세를 기록했다. AI 서버와 클라우드 투자가 메모리와 로직 반도체 수요를 동시에 밀어 올린 결과다.

한국 반도체 산업은 이 흐름에서 가장 직접적인 수혜권에 들어와 있다. 한국수출입은행은 2026년 메모리반도체 시장이 전년보다 30% 이상 성장할 것으로 전망했다. 시스템반도체 시장은 AI반도체 성장에 힘입어 10% 늘고, 파운드리 시장은 20% 성장해 2100억 달러 규모에 이를 것으로 봤다. 2026년 한국 반도체 수출도 전년보다 11% 증가할 것으로 전망했지만, 미국 관세 정책 등 통상 변수도 함께 제시했다.

한국의 강점은 AI 모델 자체보다 반도체와 제조 공급망 쪽에 가깝다. 미국 빅테크가 AI 모델과 클라우드 플랫폼을 장악하고, 대만이 첨단 파운드리와 패키징에서 높은 점유율을 가진 상황에서 한국은 메모리와 HBM, 제조 운영 능력으로 AI 골드러시의 하부 구조에 붙어 있다. AI가 더 많이 쓰일수록 연산 장비 안에 들어가는 메모리 용량과 대역폭 요구가 커지고, 서버 한 대당 반도체 부가가치도 올라간다.

HBM은 AI 골드러시에서 한국 반도체가 잡은 가장 분명한 품목이다. GPU가 연산을 맡는다면 HBM은 GPU 옆에서 대량 데이터를 빠르게 공급한다. AI 모델이 커질수록 연산칩 혼자서는 속도를 낼 수 없고, 메모리 병목을 줄이는 기술이 함께 필요하다. HBM 수요 증가는 메모리 기업의 수익성을 끌어올리지만, 생산 전환과 수율 확보, 고객사 승인, 첨단 패키징 협력까지 함께 요구한다.

파운드리와 패키징은 한국 반도체의 약한 고리로 남아 있다. AI 가속기와 고성능 GPU는 설계, 생산, 패키징, 메모리 결합이 한 묶음으로 움직인다. 미국의 팹리스 기업이 설계하고, 대만 파운드리가 생산하고, 한국 메모리 기업이 HBM을 공급하는 식의 분업 구조가 강해졌다. 한국이 메모리에서 수익을 내더라도, AI 반도체 전체 가치사슬을 얼마나 넓게 가져올지는 별개 사안이다.

수출 호황은 경기 회복에 도움을 주지만, 반도체 의존도는 한국경제의 변동성을 키운다. 메모리 가격이 오르고 HBM 수요가 늘면 수출과 기업 실적이 빠르게 개선된다. 서버 투자가 늦어지거나 빅테크의 설비투자 속도가 줄면 반도체 가격과 물량은 바로 흔들린다. AI 골드러시가 한국에 주는 수익은 크지만, 수익 구조가 특정 품목과 소수 고객, 미국 클라우드 투자 사이클에 붙어 있다는 점도 함께 봐야 한다.

이재명 정부의 AI 정책도 반도체 공급망과 떨어져 움직이기 어렵다. 정부는 2026년 예산안에서 AI 3대 강국 도약을 위한 대전환에 10조1000억 원을 편성했다. 산업·생활·공공 전 분야 AI 도입에 2조6000억 원, 인재 양성과 인프라 구축에 7조5000억 원을 배정했다. 로봇, 자동차, 조선, 가전·반도체, 팩토리 등 주요 산업의 피지컬 AI 전환에는 향후 5년간 약 6조 원을 투입하겠다고 밝혔다.

정부가 내세운 AI 고속도로도 결국 반도체와 컴퓨팅 자원 확보로 연결된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산학연의 GPU 수요에 대응해 정부 구매 1만5000장, 슈퍼컴 6호기 9000장 등을 포함한 GPU 3만7000장을 확보하고, 국가 프로젝트와 대국민 AI 서비스, 산업·벤처 스타트업, 지역 AX에 배분하겠다고 밝혔다. 국산 AI반도체 육성을 위한 K-NPU 프로젝트도 함께 추진하기로 했다.

GPU 확보는 AI 생태계의 출발선일 뿐이다. 국내에서 GPU를 많이 보유해도 전력, 냉각, 데이터센터 운영, 소프트웨어 스택, 모델 개발 인력, 산업별 데이터가 따라오지 않으면 활용률은 떨어진다. 반도체를 잘 만드는 나라와 AI를 잘 쓰는 나라는 같은 말이 아니다. 제조업 현장에 AI를 붙이고, 중소기업 자동화와 품질관리, 물류, 설계, 조선·자동차·가전 공정으로 확산시킬 수 있어야 반도체 수출 호황이 산업 생산성으로 이어진다.

피지컬 AI는 한국이 베이 지역과 다른 방식으로 골드러시에 올라탈 수 있는 통로다. 샌프란시스코의 AI 자본은 모델과 소프트웨어에 강하게 붙어 있다. 한국은 제조업 생산라인, 조선소, 자동차 공장, 반도체 클린룸, 물류센터, 병원, 도시 인프라 안에서 AI를 적용할 수 있는 산업 현장을 갖고 있다. 로봇과 설비, 센서, 공정 데이터, 품질관리 시스템을 AI와 연결하면 소프트웨어 기업 중심의 미국식 생태계와 다른 수익 구조를 만들 수 있다.

전력망은 반도체 공급망의 또 다른 병목이다. HBM 생산라인과 첨단 반도체 공장은 막대한 전기를 안정적으로 요구한다. 데이터센터도 같은 전력망 위에서 경쟁한다. AI 투자가 늘어날수록 전력 수급, 송전망 인허가, 산업단지 입지, 재생에너지 조달, 냉각수 확보가 반도체 산업정책의 일부가 된다. 반도체 공장 증설과 데이터센터 유치가 같은 지역에서 겹치면 지방정부와 전력 당국의 조정 부담도 커진다.

한국 반도체의 수익성은 글로벌 통상 질서와도 맞물린다. 한국수출입은행 전망은 2026년 반도체 수출 증가를 예상하면서도 미국 관세 정책 영향을 변수로 제시했다. 미국의 대중국 수출통제, 첨단장비 반입 제한, 보조금 조건, 관세 변화는 한국 기업의 생산지와 고객사, 장비 투자 결정에 직접 영향을 준다. AI 골드러시의 수요는 커지고 있지만, 반도체 공급망은 기술 경쟁만으로 움직이지 않는다.

베이 지역의 AI 자본 집중은 한국 반도체 산업에 수요를 제공한다. 샌프란시스코와 실리콘밸리의 모델 기업, 클라우드 사업자, 투자자들은 더 큰 모델과 더 빠른 서비스를 위해 GPU와 HBM, 서버를 계속 요구한다. 한국 기업은 그 수요에서 매출을 얻는다. 매출이 커질수록 한국 산업은 미국 빅테크 투자 계획, 엔비디아 플랫폼 로드맵, 대만 파운드리 생산 일정, 미국 통상정책에 더 깊게 연결된다.

반도체 호황이 국민경제 전체로 퍼지는 경로는 아직 좁다. 대기업 실적과 수출 지표가 먼저 개선되고, 협력업체와 장비·소재 기업이 뒤따른다. 지역 고용과 중소기업 생산성, 서비스업 소득, 청년 일자리까지 효과가 넓어지는 데는 시간이 걸린다. AI 골드러시가 만든 반도체 수익을 제조업 전환, 산업인력 재교육, 지역 산업거점, 전력망 투자로 다시 돌리지 않으면 수출 호황은 특정 기업과 특정 지역에 머물 가능성이 크다.

한국형 AI 골드러시의 두 번째 국면은 반도체를 많이 파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HBM과 메모리 수출은 출발점이고, 국산 AI반도체, 제조업 AI 적용, 전력망, 데이터센터, 중소기업 자동화가 뒤따라야 한다. AI 모델 경쟁에서 미국을 단기간에 따라잡기 어렵다면, 한국은 AI가 돌아가는 산업 기반과 제조 현장을 장악하는 쪽에서 승부를 걸어야 한다. 반도체는 금광의 곡괭이이지만, 곡괭이를 파는 것만으로 산업 전환이 완성되지는 않는다.

AI 골드러시의 돈은 샌프란시스코 모델 기업에서 시작해 반도체 공급망으로 번졌다. 세계 반도체 매출은 1조 달러 흐름으로 올라섰고, 한국의 메모리와 HBM은 가장 가까운 수혜권에 들어왔다. 동시에 파운드리, 첨단 패키징, 전력망, 데이터센터, 통상 규제, 산업 현장 적용이라는 부담도 커졌다. 한국의 AI 전략은 반도체 수출 호황을 제조업 생산성, 지역 산업, 공공서비스, 일자리 전환으로 옮기는 속도에서 평가받게 된다. 골드러시의 곡괭이를 파는 나라에서 산업 전환을 설계하는 나라로 이동할 수 있는지가 다음 국면의 변수로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