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산성 혜택 24%·대체 위험 27%…재교육·임금·안전망으로 옮겨간 성장의 청구서
[KtN 최기형기자]51%. 한국은행이 2025년 ‘AI와 한국경제’ 이슈노트에서 제시한 국내 근로자 가운데 인공지능(AI) 노출도가 높은 일자리 비중이다. 같은 분석에서 전체 근로자의 24%는 AI 도입으로 생산성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집단으로, 27%는 일자리 대체나 소득 감소 위험이 큰 집단으로 분류됐다. 세계경제포럼(WEF)은 2025~2030년 구조적 노동시장 변화로 전 세계에서 1억7000만 개의 일자리가 새로 생기고, 9200만 개가 사라질 것으로 전망했다. 숫자만 놓고 보면 순증이지만, 실제 충격은 직무와 임금, 기업 규모, 지역에 따라 다르게 번진다. AI 투자가 성장의 이름으로 들어오는 순간, 노동시장은 누가 AI를 도구로 쓰고 누가 AI에 밀려나는지를 가르는 단계로 들어간다.
샌프란시스코와 베이 지역은 AI 자본이 만든 노동시장 변화를 먼저 겪고 있다. 맥킨지는 베이 지역을 321개 유니콘 기업과 약 1조2000억 달러 규모의 지역 국내총생산(GDP)을 가진 혁신 생태계로 제시했다. 샌프란시스코에는 2019년부터 2024년까지 약 1230억 달러의 AI 관련 민간자본이 들어왔고, 2025년 샌프란시스코 기반 기업은 전 세계 벤처캐피털 자금의 30%를 받았다.
자본의 속도와 주민의 체감은 같은 방향으로 움직이지 않았다. 맥킨지는 샌프란시스코의 GDP가 2019년 이후 강하게 회복됐지만 총고용과 중위 가구소득은 GDP 성장세에 미치지 못했다고 적었다. 생활비는 미국 평균보다 15% 높았고, 2024년 상위 20%와 하위 20% 가구의 소득 격차는 약 21배였다. 학위 보유 노동자의 소득은 비학위 노동자의 2.4배였다.
AI 산업이 커져도 도시 전체의 일자리와 소득이 같은 속도로 좋아지지 않는다는 점은 한국에도 중요하다. 모델 기업과 클라우드 기업, 반도체 공급망, 데이터센터, 전력망, 피지컬 AI가 이어지면 투자 총액은 커진다. 다만 투자로 생기는 고임금 일자리와 기존 노동자가 실제로 옮겨갈 수 있는 일자리 사이에는 간격이 생긴다. AI가 만든 부가가치가 임금과 지역 소득으로 퍼지지 않으면 성장률과 체감경기는 따로 움직인다.
샌프란시스코의 산업 편중도 노동시장 위험을 키운다. 맥킨지는 샌프란시스코 전체 임대 수요의 35%가 AI 관련 활동에서 나오고, 생성형 AI의 영향이 클 수 있는 산업이 샌프란시스코 GDP의 약 40%와 연결돼 있다고 분석했다. 지식노동자가 도시 경쟁력의 핵심이었지만, 생성형 AI는 바로 그 지식노동의 일부를 흔들 수 있다.
세계 노동시장 전망은 단순한 낙관이나 비관으로 정리되지 않는다. WEF는 2025~2030년 노동시장 변화가 오늘날 전체 일자리의 22%에 해당하는 창출과 소멸을 일으킬 것으로 봤다. 새 일자리는 1억7000만 개, 사라지는 일자리는 9200만 개, 순증은 7800만 개로 제시됐다. 동시에 기존 노동자가 가진 핵심 역량의 39%가 바뀌거나 낡아질 것으로 전망했다.
일자리의 이름보다 직무의 내용이 먼저 바뀐다. WEF는 기술·데이터·AI 관련 직무가 비율 기준으로 빠르게 늘고, 농업·배송·건설·판매·식품가공 같은 현장 직무와 돌봄·교육 직무도 절대 규모에서 크게 늘 것으로 봤다. 반대로 계산원, 행정 보조, 은행 창구, 데이터 입력 같은 사무·반복 직무는 감소 압력을 받을 것으로 전망했다. AI 충격은 공장 자동화처럼 생산직만 겨냥하지 않고 사무실의 반복 판단, 문서 처리, 고객 응대, 기초 분석 업무로 들어간다.
한국은행의 분석도 같은 방향을 가리킨다. 국내 근로자 중 51%가 AI 노출도가 높은 일자리에 있고, 그 안에서 24%는 AI를 활용해 생산성 혜택을 받을 가능성이 큰 집단으로, 27%는 대체나 소득 감소 위험이 큰 집단으로 나뉜다. 여성, 청년층, 고학력·고소득층에는 AI가 위기와 기회로 동시에 작용할 수 있다는 분석도 함께 제시됐다.
고학력 노동자가 모두 안전한 것도 아니다. 생성형 AI는 글쓰기, 번역, 코딩, 회계, 법률 검토, 디자인 초안, 마케팅 문안, 금융 분석처럼 학력과 숙련을 요구하던 업무 일부를 직접 건드린다. 다만 고학력·고소득 노동자 중에는 AI를 보조도구로 쓰며 생산성을 높일 수 있는 직무도 많다. 같은 고노출 직군 안에서도 고객을 설득하고, 현장을 판단하고, 책임을 지고, 복잡한 예외를 처리하는 사람은 AI를 도구로 쓸 가능성이 크다. 반복 문서와 기초 분석에 머문 사람은 AI와 직접 경쟁하게 된다.
청년 노동시장에는 입구 문제가 생긴다. 기업은 과거에 신입에게 맡기던 문서 작성, 자료 조사, 코드 보조, 고객 응대, 보고서 초안 업무를 AI로 처리할 수 있다. 숙련자는 AI를 이용해 더 많은 일을 처리하지만, 신입은 숙련을 쌓을 첫 업무를 잃을 수 있다. 채용 축소가 대량해고보다 먼저 나타나면 청년층은 AI 충격을 가장 조용하게 맞는다. 통계상 일자리가 급감하지 않아도 경력의 출발점은 좁아질 수 있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2023년 연구보고서에서 기술적 자동화 가능성과 실제 자동화를 구분했다. 2023년 현재 기술 수준으로 국내 일자리의 38.8%에서 업무의 70% 이상을 기술적으로 자동화할 수 있다고 추산했다. 2030년에는 현재 형태의 일자리 약 90%에서 직무의 90% 이상을 기술적으로 자동화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했다. 다만 KDI는 기술적 가능성이 현실의 자동화로 곧바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며, 경제사회적 조건과 직무 재구성에 따라 생산성 강화로 갈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기업 규모는 AI 혜택의 분배를 가르는 중요한 선이다. 한국은행은 AI 도입에 따른 생산성 증대 효과가 모든 기업에 보편적으로 나타나지 않고, 대기업과 업력이 긴 기업에서 두드러진다고 분석했다. 기업 간 생산성 격차가 더 커질 수 있다는 뜻이다. AI를 쓸 데이터와 인력, 보안 체계, 클라우드 계약, 현장 실증 능력을 가진 기업은 앞서가고, 그렇지 못한 기업은 장비와 소프트웨어를 사도 성과를 내기 어렵다.
중소기업 노동자는 이중 압박을 받는다. 회사가 AI를 잘 도입하면 직무가 바뀌고 재교육이 필요하다. 회사가 AI 도입에 뒤처지면 기업 경쟁력이 약해지고 고용 안정성이 흔들린다. 대기업은 사내 교육과 직무 전환, 내부 이동을 설계할 수 있지만, 중소기업은 생산라인을 멈추고 훈련 시간을 확보하기 어렵다. AI 전환이 대기업의 생산성 향상과 중소기업의 비용 부담으로 갈라지면 산업 전체의 임금 격차도 커진다.
제조업 현장에서도 사람의 역할은 사라지기보다 바뀐다. 설비 이상 감지, 품질검사, 물류 최적화, 에너지 관리, 안전 모니터링에 AI가 들어가면 단순 반복 업무는 줄어든다. 대신 로봇 유지보수, 데이터 관리, 설비 제어, 안전 검증, AI 결과 해석 인력이 필요해진다. 문제는 줄어드는 업무와 늘어나는 업무가 같은 노동자에게 자동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전환 교육과 임금 보상, 직무 재배치가 없으면 생산성 향상은 기업의 이익으로 남고 노동자는 불안만 떠안는다.
고용노동부가 2025년 말 내놓은 ‘AI+역량 Up 프로젝트’는 이런 흐름을 반영했다. 노동시장 진입기, 활동기, 전환기에 있는 국민의 AI 활용역량 강화를 목표로 삼고, AI 온라인 무료교육 10만 명, AX 기업 맞춤형 훈련 600개소, 중장년 AI 기초활용 교육 2만8000명, AX 훈련 1000명, 직무 전환훈련 500명 등을 제시했다. 지역 산업과 맞춘 피지컬 AI 실습실 4곳, AI 특화 공동훈련센터 20곳 신규 지정 계획도 포함됐다.
훈련 규모보다 중요한 것은 현장 연결이다. 온라인 강의는 AI 도구의 기본 사용법을 익히는 데 도움이 된다. 그러나 제조업, 금융, 의료, 공공행정, 물류, 콘텐츠 현장에서 필요한 역량은 업무 데이터와 책임 기준, 보안 규칙, 고객 대응을 함께 다뤄야 생긴다. 교육이 실제 직무와 떨어져 있으면 수료증은 늘어도 전환 가능성은 높아지지 않는다. 기업이 업무를 재설계하고, 노동자가 근무시간 안에서 새 도구를 써보고, 성과와 임금 체계가 함께 바뀌어야 한다.
직업능력 체계도 바뀌기 시작했다. 고용노동부는 2026년 4월 직업기초능력을 ‘직업공통능력’으로 개편하면서 AI 활용능력, 디지털책임의식, 산업안전보건의식 등을 포함한 7개 영역으로 재구조화하겠다고 밝혔다. 직무와 상관없이 모든 직업인이 갖춰야 할 핵심 역량을 AI 시대에 맞춰 다시 정리한 조치다.
AI 활용능력은 프롬프트를 잘 쓰는 기술에 그치지 않는다. 어떤 업무를 AI에 맡겨도 되는지, 어떤 결과는 사람이 검토해야 하는지, 개인정보와 영업비밀을 어떻게 보호해야 하는지, AI가 낸 답을 어떤 기준으로 고쳐야 하는지를 포함한다. 디지털책임의식은 사무직과 개발자만의 역량이 아니다. 공장 작업자, 병원 행정 인력, 금융 상담사, 교사, 공무원, 콘텐츠 제작자 모두에게 필요한 직업 윤리로 바뀌고 있다.
임금 체계도 영향을 받는다. AI를 잘 쓰는 노동자는 같은 시간에 더 많은 산출물을 만들 수 있다. 기업은 생산성이 오른 노동자에게 더 높은 보상을 줄 수도 있고, 같은 인력으로 더 많은 일을 처리하며 인건비를 줄일 수도 있다. 성과급과 직무급, 연공급이 섞인 한국 기업의 임금 구조에서는 AI 활용 능력이 임금에 어떻게 반영될지 아직 분명하지 않다. 보상 체계가 뒤따르지 않으면 노동자는 AI 도입을 자기 일자리와 임금을 줄이는 도구로 받아들일 가능성이 크다.
노동조합과 노사협의의 의제도 바뀐다. AI 도입은 단순한 전산 시스템 교체가 아니다. 업무량 산정, 평가 기준, 감시 범위, 인력 배치, 전환 교육, 해고 기준, 안전 책임이 함께 걸린다. 콜센터의 상담 분석, 물류센터의 동선 추적, 공장의 작업 속도 관리, 사무직의 문서 생산량 평가에 AI가 들어가면 노동 감시 논란도 커질 수 있다. AI 도입 전후로 어떤 데이터를 수집하고, 누가 접근하고, 평가에 어떻게 쓰는지 노사가 확인할 절차가 필요하다.
공공부문도 예외가 아니다. 행정, 복지, 고용서비스, 세무, 안전, 교육, 의료에 AI가 들어가면 공무원과 공공기관 직원의 직무가 바뀐다. 단순 민원 응대와 문서 작성은 줄어들 수 있지만, AI 판단을 검토하고 시민에게 설명하며 오류를 바로잡는 업무는 늘어난다. 공공 AI가 책임 없는 자동화로 흐르면 행정 신뢰가 흔들린다. 공공부문 노동자는 AI를 쓰는 사용자이면서 시민 권리를 보호하는 최종 확인자가 된다.
AI 전환은 사회안전망의 설계도 바꾼다. 직무가 빠르게 바뀌는 시장에서는 실직 뒤 재취업만 지원하는 방식으로 부족하다. 재직 중 훈련, 근로시간 조정, 직무 이동, 임금 보전, 중장년 재교육, 지역 일자리 매칭이 함께 움직여야 한다. 한국은행은 국내 노동시장의 경직성과 이중구조가 근로자의 원활한 일자리 전환을 가로막는 요인이라고 지적했다. AI 전환이 빠를수록 정규직 대기업과 비정규직·중소기업 노동자 사이의 이동 가능성 차이가 더 중요해진다.
지역 노동시장도 같은 충격을 받는다. 수도권의 AI 기업과 대기업 연구소는 고급 인재를 빨아들이고, 지역 제조업은 현장 AI를 운용할 사람을 찾기 어려워질 수 있다. 반도체, 조선, 자동차, 기계, 바이오 산업단지에서 필요한 인력은 지역대학과 폴리텍, 직업훈련기관, 대기업 협력사가 함께 길러야 한다. 지역에서 교육받은 사람이 수도권으로 이동하고, 지역 기업은 다시 사람을 구하지 못하는 구조가 반복되면 AI 산단과 피지컬 AI 투자는 현장 인력 부족에 막힌다.
AI가 만든 생산성 향상이 국민경제의 성장으로 이어지려면 분배 경로가 필요하다. 기업 이익이 늘고 주가가 올라가도 임금, 고용 안정, 서비스 품질, 지역 소득으로 이어지지 않으면 성장의 체감은 약하다. 샌프란시스코가 이미 보여준 흐름은 이 대목에서 중요하다. 세계적 AI 자본과 인재가 몰려도 생활비, 소득 격차, 도심 회복 지연이 함께 나타날 수 있다.
한국형 AI 골드러시는 일자리 숫자보다 전환의 품질로 평가받게 된다. 몇 명이 교육을 받았는지보다 어떤 직무로 옮겨갔는지, 임금이 유지됐는지, 중소기업과 지역 기업이 실제로 AI를 쓸 수 있게 됐는지, 청년이 경력을 시작할 입구를 확보했는지가 중요하다. AI를 도입한 기업이 생산성을 높이는 동안 노동자가 새 역할로 이동할 통로를 만들지 못하면 기술은 불안을 키우는 이름으로 남는다.
AI는 일자리를 한꺼번에 없애는 단일 충격이 아니라 직무와 임금, 기업 규모, 지역을 다르게 흔드는 구조 변화다. 한국은행은 국내 근로자의 51%가 AI 노출도가 높은 일자리에 있고, 그중 24%는 생산성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집단, 27%는 대체나 소득 감소 위험이 큰 집단이라고 분석했다. WEF는 2030년까지 세계 노동시장에서 1억7000만 개의 일자리가 생기고 9200만 개가 사라지는 변화를 전망했다. 한국의 대응은 AI 도입을 늦추는 쪽이 아니라 노동자가 AI와 함께 일할 수 있는 직무로 이동하는 길을 넓히는 쪽이어야 한다. 재교육, 임금 보상, 직무 재설계, 중소기업 지원, 지역 훈련망, 사회안전망이 함께 움직일 때 AI 골드러시는 일부 기업의 생산성 향상을 넘어 노동시장 전체의 전환으로 남는다.
후원=NH농협 302-1678-6497-21 위대한자
관련기사
- [AI 골드러시⑧] 빠른 AI, 늦은 신뢰…규제가 된 산업 인프라
- [AI 골드러시⑦] AI 산단의 승부, 땅보다 전력·데이터·사람
- [AI 골드러시⑥] 벤처투자 13조 회복, 더 큰 기업으로 몰린 돈
- [AI 골드러시⑤] 로봇 1위 한국, AI 공장은 아직 다른 싸움
- [AI 골드러시④] 돈보다 귀해진 사람, AI 인재 쟁탈전의 그늘
- [AI 골드러시③] 전기를 먹는 AI, 데이터센터가 흔든 전력 지도
- [AI 골드러시②] 금맥보다 곡괭이, 반도체 공급망에 붙은 AI 돈
- [AI 골드러시①] 샌프란시스코에 몰린 AI 자본, 도시 안에 쌓인 비용
- [AI 골드러시⑩] AI 부의 집중, 한국형 확산 구조의 설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