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 지역 35% 시총 집중과 21배 소득 격차…반도체·전력·제조·노동 전환을 잇는 국가 산업전략

[AI 골드러시⑩] AI 부의 집중, 한국형 확산 구조의 설계. 사진=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AI 골드러시⑩] AI 부의 집중, 한국형 확산 구조의 설계. 사진=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KtN 최기형기자]35%. 세계 상위 100개 기업 시가총액에서 베이 지역 본사 기업들이 차지한 비중이다. 2019년 20%였던 비중은 AI 경쟁이 본격화된 뒤 더 커졌다. 애플, 알파벳, 브로드컴, 메타 네 곳만으로도 세계 상위 100개 기업 시가총액의 29%를 차지했다. 베이 지역은 321개 유니콘 기업과 약 1조2000억 달러의 지역 국내총생산(GDP)을 가진 혁신 거점이지만, 샌프란시스코의 소득 격차와 생활비, 산업 편중도 같은 속도로 커졌다. AI 골드러시가 남긴 가장 큰 신호는 분명하다. 돈은 빠르게 모이지만, 부가가치가 사회 전체로 퍼지는 구조는 따로 만들어야 한다.

베이 지역의 AI 성장은 압도적인 숫자로 시작됐다. 샌프란시스코는 2019년부터 2024년까지 약 1230억 달러의 AI 관련 민간자본을 끌어들였고, 2025년에는 샌프란시스코 기반 기업들이 전 세계 벤처캐피털 자금의 30%를 받았다. 2019년부터 2025년까지 샌프란시스코가 확보한 AI 소프트웨어·서비스 투자액은 약 3750억 달러였다. 클라우드, 사이버보안, 자율주행차, 로보틱스 투자액을 크게 웃도는 규모다.

자본 집중은 기술 개발 속도를 높였다. 대학, 연구자, 창업자, 벤처캐피털, 빅테크, 법률·회계·컨설팅 네트워크가 가까운 거리에서 움직였고, 실험은 투자와 채용으로 빠르게 이어졌다. 세계 상위 AI 기업과 특허, 고급 인재가 좁은 도시권 안에 모였기 때문에 샌프란시스코는 생성형 AI의 상징 도시가 됐다. 그러나 같은 구조가 도시의 약점도 키웠다. AI 관련 활동은 샌프란시스코 전체 임대 수요의 35%를 차지했고, 생성형 AI의 영향이 클 수 있는 산업은 샌프란시스코 GDP의 약 40%와 연결돼 있었다.

샌프란시스코의 GDP는 팬데믹 이후 강하게 회복됐지만, 고용과 중위 가구소득은 같은 속도로 따라오지 못했다. 생활비는 미국 평균보다 15% 높았고, 2024년 상위 20%와 하위 20% 가구의 소득 격차는 약 21배였다. 학위 보유 노동자의 소득은 비학위 노동자의 2.4배였다. AI 자본이 몰린 도시에서도 성장의 체감은 계층과 직무, 주거 여건에 따라 갈라졌다.

한국이 베이 지역을 그대로 따라갈 이유는 없다. 샌프란시스코식 창업 생태계는 세계적 대학과 민간 벤처자본, 빅테크 플랫폼, 영어권 시장, 이민 인재, 거대한 회수시장이 결합된 결과다. 한국은 같은 방식으로 AI 부를 만들기 어렵다. 한국의 출발선은 반도체, 제조업, 통신망, 산업단지, 공공 디지털 인프라, 대기업 공급망에 더 가깝다. AI 전략의 방향도 모델 기업 몇 곳을 키우는 데서 멈추면 폭이 좁아진다.

2026년 정부 예산안은 AI를 성장전략의 앞줄에 놓았다. ‘AI 3대 강국’ 도약을 위한 10조1000억 원, 첨단전략산업 등 핵심기술 연구개발 35조3000억 원, AI 인재 1만1000명 양성, 고성능 GPU 1만5000장 추가 구매, 5년간 150조 원 규모 국민성장펀드 조성이 주요 항목으로 들어갔다. 산업·생활·공공 전 분야 AI 도입, AI 로봇·자동차·조선·가전, 복지·고용·납세·신약심사 분야 AI 확산도 함께 제시됐다.

예산과 장비는 출발선이다. GPU를 확보하고, 인재 수를 늘리고, 펀드를 조성해도 AI가 생산성으로 바뀌려면 산업 현장과 지역 경제, 노동시장, 전력망, 데이터 제도까지 연결돼야 한다. 연산 자원이 연구실과 일부 대기업에만 머물면 국가 전체의 생산성 향상으로 이어지기 어렵다. 공공부문 AI 서비스가 늘어도 시민이 체감하는 행정 개선과 안전, 복지, 의료, 교육의 품질이 따라오지 않으면 투자는 숫자로만 남는다.

한국은행은 AI 도입이 한국경제의 생산성을 1.1~3.2%, GDP를 4.2~12.6% 높일 수 있는 잠재력을 가진다고 분석했다. 같은 분석에서 국내 일자리의 51%는 AI 도입에 큰 영향을 받을 수 있는 일자리로 분류됐다. 전체 근로자의 24%는 AI로 생산성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집단, 27%는 대체되거나 소득이 감소할 가능성이 큰 집단이었다. AI의 성장 효과와 노동시장 충격이 같은 표 안에 놓인 셈이다.

성장률 전망만으로 AI 전략을 평가하기 어려운 이유도 여기에 있다. AI가 GDP를 높여도 혜택이 일부 기업과 일부 직무, 일부 지역에 몰리면 사회적 비용은 커진다. 대기업은 데이터와 인력, 클라우드 계약, 보안 체계를 갖추고 AI를 빠르게 도입할 수 있다. 중소기업은 설비 데이터가 흩어져 있고, 인력은 부족하며, 생산을 멈추고 재교육할 여력이 작다. 같은 AI 기술도 기업 규모와 산업 구조에 따라 생산성 격차를 더 벌릴 수 있다.

반도체는 한국형 AI 골드러시의 가장 현실적인 돈줄이다. AI 서버에는 GPU와 고대역폭메모리(HBM), 메모리, 전력반도체, 첨단 패키징, 장비가 필요하다. 한국은 메모리와 제조 공정에서 강점을 갖고 있고, AI 수요는 반도체 수출과 설비투자 흐름을 밀어 올릴 수 있다. 다만 반도체 호황이 국가경제 전체의 안정으로 자동 전환되지는 않는다. 고객은 글로벌 빅테크와 클라우드 기업에 집중돼 있고, 미국 통상정책과 중국 시장, 대만 파운드리, 장비 공급망, 전력망이 함께 얽혀 있다.

제조업도 같은 흐름에 있다. 로봇, 자동차, 조선, 가전·반도체, 팩토리 분야에 AI를 붙이는 피지컬 AI는 한국 제조업에 맞는 통로다. 공장 안에는 설비 운전 기록, 불량률, 온도와 습도, 진동, 작업자 동선, 에너지 사용량이 쌓여 있다. 이 데이터는 외부 플랫폼 기업이 쉽게 복제하기 어렵다. 그러나 데이터가 공장 안에 있다는 사실과 AI가 쓸 수 있는 상태로 정리돼 있다는 사실은 다르다. 데이터 표준, 보안, 협력사 참여, 원청과 하청의 사용권, 성과 배분이 함께 정리돼야 한다.

전력망은 AI 산업의 속도를 물리적으로 제한한다. 데이터센터와 반도체 공장, 배터리 공장, 로봇·자동차 생산라인은 모두 안정적인 전기를 요구한다. AI 시대의 전력은 싸고 안정적인 전력에 머물지 않는다. 글로벌 고객사는 재생에너지 사용과 탄소 배출까지 따진다. 송전망과 변전소, 재생에너지 발전지, 산업단지 입지가 맞물리지 않으면 AI 데이터센터와 제조업 AI 전환은 지역 갈등과 전력 비용에 막힐 수 있다.

벤처시장도 AI의 확산 구조를 가르는 통로다. 2025년 국내 벤처투자는 13조6244억 원으로 전년보다 14.0% 늘며 역대 두 번째 규모를 기록했다. 창업 7년 이내 기업 투자 비중은 45.6%, 창업 7년 초과 후기기업 비중은 54.4%였다. ICT서비스 투자는 줄었고, 바이오·의료와 전기·기계·장비, ICT제조 투자는 늘었다. 돈은 다시 돌기 시작했지만, 더 많은 돈은 검증된 성장기업과 실물 기반 분야로 흘렀다.

AI 스타트업의 진입 비용은 이전 세대보다 높다. 모델을 만들려면 계산 자원과 데이터가 필요하고, 제조업 AI는 고객사의 공장 안에서 실증해야 한다. 의료·금융·공공 AI는 규제와 보안, 책임 기준을 넘어야 한다. 창업자가 아이디어와 개발자 몇 명으로 시장에 들어가던 방식은 AI 시대에 더 좁아졌다. 정책자금은 초기 공백을 메울 수 있지만, 실증 고객과 해외 시장, 회수시장이 뒤따르지 않으면 기업은 연구개발 단계에 오래 머문다.

지역 산업단지는 한국형 확산 구조의 실제 무대다. 반도체는 경기 남부와 충청권, 조선은 울산·거제·부산, 자동차는 울산·화성·광주, 기계·로봇은 창원·대구·대전권과 맞물려 있다. 지역마다 필요한 AI는 다르다. 반도체 공장은 수율과 장비 이상 감지가 중요하고, 조선소는 용접·도장·물류와 안전 검증이 중요하다. 자동차 공장은 유연생산과 품질검사, 배터리 관리가 함께 움직인다. 같은 AI 솔루션을 전국에 복제하는 방식으로는 지역 산업의 비용 구조를 바꾸기 어렵다.

지역 확산은 청년 인재와 생활 조건을 함께 요구한다. AI 연구자와 엔지니어는 일자리만 보고 움직이지 않는다. 주거, 교통, 교육, 의료, 문화시설, 배우자 일자리, 장기 커리어를 함께 본다. 산단에 AI 간판을 붙이고 실증센터를 세워도 사람이 남지 않으면 기업은 다시 수도권 인력에 의존한다. 지역대학과 폴리텍, 출연연, 대기업 협력사, 지방정부가 같은 산업 문제를 놓고 교육과 채용, 실증을 묶어야 한다.

노동 전환은 AI 확산 구조의 사회적 기반이다. AI를 도입한 기업은 같은 인력으로 더 많은 일을 처리할 수 있고, 일부 직무는 줄어들 수 있다. 생산성 향상이 임금과 직무 전환, 교육 시간, 고용 안정으로 이어지지 않으면 노동자는 AI를 자기 일자리와 임금을 줄이는 도구로 받아들인다. 기업이 AI를 도입할 때 어떤 데이터를 수집하고, 어떤 평가에 쓰며, 어떤 직무를 줄이고, 어떤 교육을 제공할지 노사 간 절차도 필요해진다.

공공부문은 AI의 체감 경로다. 복지·고용, 납세, 신약심사, 안전, 교육, 의료 같은 영역에 AI가 들어가면 시민은 편리함과 함께 설명을 요구한다. 지원 대상에서 제외된 이유, 위험군으로 분류된 근거, 심사가 지연된 이유, 어떤 데이터가 판단에 들어갔는지 알 수 있어야 한다. 공공 AI가 책임 없는 자동화로 흐르면 효율보다 불신이 먼저 커진다. 공공부문 AI는 행정 속도를 높이는 기술이면서 시민 권리를 다루는 제도다.

AI기본법 시행은 이 흐름을 제도권으로 끌어들였다. 2026년 1월 22일부터 시행된 인공지능기본법은 생성형 AI 결과물 표시, 고영향 AI와 생성형 AI의 투명성, 안전한 활용 기반을 주요 내용으로 삼았다. 정부는 최소 1년 이상의 유예와 지원데스크를 통해 기업의 제도 적응을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AI가 의료, 금융, 교육, 채용, 공공서비스, 콘텐츠, 제조 안전에 들어갈수록 신뢰 규칙은 규제가 아니라 시장 진입 조건이 된다.

한국형 AI 전략에는 기술주권도 들어간다. 정부는 5개 AI 정예팀을 선정해 한국형 독자 AI 파운데이션 모델 개발을 추진하고, 다양한 AI 서비스 출시와 경제·사회 전반의 AI 전환을 기대한다고 밝혔다. 독자 모델은 단순한 자존심의 문제가 아니다. 공공 데이터, 한국어, 제조업 데이터, 보안이 중요한 산업에서는 어떤 모델을 쓰고, 어떤 데이터가 어디에서 학습되며, 결과를 누가 검증하는지가 산업 주도권과 연결된다.

해외 빅테크와의 협력도 필요하다. GPU와 클라우드, 모델, 보안, 글로벌 고객망에서 한국 기업이 모든 것을 독자적으로 만들기는 어렵다. 다만 협력이 의존으로 굳어지면 제조 현장 데이터와 공공 데이터, 콘텐츠 데이터가 해외 플랫폼 위에서만 움직일 수 있다. 한국 기업이 해외 모델을 쓰더라도 데이터 통제권과 보안 기준, 비용 구조, 국내 기업의 부가가치 몫을 따져야 한다. AI 생태계의 개방성과 산업 주도권은 동시에 관리돼야 한다.

샌프란시스코의 경험은 이 지점에서 다시 중요해진다. 베이 지역은 세계 최고 수준의 자본과 인재, 기업 집중을 이뤘다. 동시에 경제 성과가 주민의 생활수준과 도시 기능, 계층 이동으로 넓게 퍼지지 않을 수 있다는 사실도 드러냈다. 한국은 베이 지역의 속도를 부러워하기보다 집중의 비용을 먼저 읽어야 한다. 수도권과 대기업, 일부 고급 인재에게 AI 부가가치가 쏠리면 한국형 AI 골드러시는 성장 담론과 생활 체감 사이의 간격을 키울 수 있다.

국가 전략의 기준도 달라져야 한다. GPU 몇 장을 확보했는지, 유니콘 기업이 몇 곳 생겼는지, AI 예산이 얼마나 늘었는지만으로는 부족하다. 중소기업 생산성이 올랐는지, 노동자가 새 직무로 옮겨갔는지, 지역 산단의 불량률과 에너지 비용이 줄었는지, 공공서비스의 신뢰가 높아졌는지, 청년이 AI 산업에서 경력을 시작할 입구를 얻었는지 함께 봐야 한다. AI의 성과는 기술 지표와 사회 지표를 따로 떼어 평가하기 어렵다.

한국형 확산 구조는 네 갈래로 묶여야 한다. 첫째, 반도체와 데이터센터, 전력망을 하나의 인프라 투자로 봐야 한다. 둘째, 제조업 AI와 지역 산단을 공장 데이터·협력사·지역대학과 연결해야 한다. 셋째, 벤처투자와 공공조달, 해외 진출을 묶어 초기 AI 기업의 실증과 회수 경로를 넓혀야 한다. 넷째, 노동 전환과 신뢰 제도를 산업정책의 바깥이 아니라 내부에 놓아야 한다.

AI 골드러시의 승자는 금맥을 먼저 발견한 쪽만이 아니다. 금을 캐는 장비를 만들고, 전기를 공급하고, 사람을 교육하고, 지역에 일자리를 남기고, 신뢰받는 시장을 만든 쪽이 더 오래 간다. 한국이 가진 제조업과 반도체 기반은 분명한 자산이다. 그러나 자산은 연결될 때만 힘을 낸다. 반도체 호황이 중소 협력사 생산성으로 이어지고, 데이터센터 투자가 지역 전력망과 청년 일자리로 이어지고, AI 예산이 공공서비스와 노동 전환으로 이어져야 한다.

AI 부는 먼저 집중된다. 베이 지역은 세계 상위 100개 기업 시가총액의 35%를 끌어안았고, 샌프란시스코는 막대한 AI 자본을 흡수했다. 같은 도시 안에서는 생활비와 소득 격차, 산업 편중도 함께 커졌다. 한국의 AI 전략은 이 집중을 그대로 복제하는 방식이 될 수 없다. 반도체, 전력망, 제조 현장, 지역 산단, 벤처 생태계, 노동 전환, 신뢰 제도를 한 흐름으로 묶어야 한다. 한국형 AI 골드러시의 성패는 세계적 모델 기업 한두 곳을 만드는 속도보다 AI가 만든 부가가치를 산업과 지역, 노동자의 삶으로 얼마나 넓게 흘려보내는지에서 갈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