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형근·박래현·장욱진과 김환기·로스코·마티스 한자리에…10월 3일 미국 단독 개막
[KtN 신미희기자]방탄소년단(BTS) RM(김남준)이 수집해온 미술품이 오는 10월 3일 미국 샌프란시스코 현대미술관(San Francisco Museum of Modern Art·SFMOMA) 7층에 들어선다. ‘RM x SFMOMA: Between You and Me’는 RM의 개인 소장품을 중심에 둔 첫 미술관 전시다. RM 컬렉션과 SFMOMA 소장품에서 고른 200점을 함께 선보이며, 미국에서는 SFMOMA에서만 열린다. 출품작 가운데 상당수는 미국 일반 관객에게 처음 공개되는 작품이다.
작품 소유자 넘어 전시 공동 기획자로
RM은 작품을 대여하는 소장자에 머물지 않고 전시 기획에 직접 참여했다. 아메리카 카스티요(América Castillo) SFMOMA 전시기획 프로젝트 매니저, 김효은(Hyoeun Kim) 회화·조각 담당 보조 큐레이터가 공동 기획자로 참여한다. SFMOMA가 RM에게 개인 컬렉션을 공개하는 첫 전시의 기획을 제안하면서 협업이 시작됐다.
유명인의 소장품 전시는 작품 가격과 구매 이력, 소유자의 취향에 관심이 집중되기 쉽다. ‘Between You and Me’는 RM 컬렉션만 따로 늘어놓지 않고 미술관 소장품을 함께 배치한다. 사적으로 축적된 작품과 공공 미술관이 수집·연구해온 작품 사이에서 공통된 주제와 조형적 연관성을 찾는 구성이다.
200점이라는 규모보다 눈에 띄는 대목도 두 컬렉션을 결합한 전시 형식이다. 개인의 선택으로 형성된 컬렉션은 미술관 소장품과 만나는 순간 새로운 해석의 대상이 된다. RM이 어떤 작품을 소유했는지 보여주는 데서 끝나지 않고, 작품들이 서로 어떤 관계를 형성하는지 살피는 전시로 범위가 넓어진다.
RM은 동양과 서양, 한국과 미국, 근대와 동시대, 개인과 보편 사이에 놓인 경계를 전시의 출발점으로 제시했다. 작품을 바라보는 방식을 미리 정해주지 않겠다는 입장도 밝혔다. 관람객에게 전시가 “작지만 단단한 다리”가 되기를 바란다는 말에는 수집가의 해석을 정답으로 내놓지 않겠다는 태도가 담겼다.
윤형근부터 모란디까지, 11점의 프리뷰
개막에 앞서 공개된 프리뷰는 11점이다. RM 컬렉션에서는 윤형근의 ‘Untitled’(1973), 장욱진의 ‘The River Scene’(1988), 한영수의 ‘Deoksugung Palace, Jeong-Dong, Seoul, Korea’(1956∼1963), 이원우의 ‘Candy valley_2023_002’(2023), 유영국의 ‘Work (Sea)’(1982), 조르조 모란디(Giorgio Morandi)의 ‘Fiori’(1949), 김윤신의 ‘Add Two Add One, Divide Two Divide One 2015-9’(2015)가 소개됐다.
SFMOMA 소장품에서는 이브 클랭(Yves Klein)의 ‘Éponge (SE251)’(1961), 웨인 티보(Wayne Thiebaud)의 ‘Clown and Beast’(2018∼2019), 김환기의 ‘26-I-70’(1970), 마크 로스코(Mark Rothko)의 ‘No. 14, 1960’(1960)이 먼저 공개됐다.
11점의 제작 시기는 1949년부터 2023년까지 74년에 걸쳐 있다. 한국 근현대회화와 사진, 조각, 이탈리아 정물화, 미국 색면회화와 팝아트 계열 작업이 한 전시 안에 들어온다. 국적과 세대, 매체를 기준으로 작품을 나누기보다 서로 다른 시간과 지역에서 만들어진 작품을 교차해 배치하려는 방향이 프리뷰에서 드러난다.
RM 컬렉션에 포함된 모란디 작품은 전시가 한국 미술만으로 구성되지 않는다는 사실도 보여준다. 윤형근·장욱진·유영국·김윤신·이원우·한영수의 작품과 모란디 회화가 한 소장처에서 나온다. 한국 작가를 중심에 두면서도 특정 국가나 한 세대에 수집 범위를 가두지 않은 구성이 확인된다.
한영수의 서울 사진과 이원우의 2023년 작품이 함께 소개된 점도 주목할 만하다. 전후 서울을 기록한 사진에서 동시대 작업까지 이어지는 시간의 폭은 RM 컬렉션을 몇몇 유명 화가의 회화 목록으로만 설명하기 어렵게 만든다. 수집가의 관심이 한국 근현대미술의 주요 작가와 젊은 동시대 작가, 해외 근대미술을 함께 향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박래현·권옥연·도상봉까지 넓어진 한국 미술의 축
전체 전시에는 프리뷰에 나온 작가 외에도 박래현, 권옥연, 도상봉의 작품이 포함된다. 윤형근, 김윤신, 장욱진과 함께 RM 컬렉션을 구성하는 주요 한국 작가로 소개됐다. SFMOMA 소장품에서는 김환기를 비롯해 로스코, 아그네스 마틴(Agnes Martin), 앙리 마티스(Henri Matisse), 조지아 오키프(Georgia O’Keeffe), 파울 클레(Paul Klee)의 작품이 나온다.
한국 작가 명단은 하나의 미술운동이나 형식으로 묶이지 않는다. 도상봉과 권옥연, 장욱진의 구상회화에서 박래현의 실험적인 회화와 판화, 윤형근의 추상회화, 김윤신의 조각까지 작업의 출발점과 제작 방식이 다르다. 한국 근현대미술을 단색화나 추상회화에 한정하지 않고 여러 세대와 매체를 함께 소개할 수 있는 구성이다.
SFMOMA는 작품을 국적별로 구획하기보다 반복되는 주제와 조형적 공명을 중심으로 연결한다는 방향을 제시했다. 한국 작품이 미국·유럽 미술의 주변부에 놓이는 방식이 아니라, 미술관 대표 소장품과 같은 전시 안에서 해석되는 구조다. 김환기 작품도 RM 컬렉션이 아니라 SFMOMA 소장품으로 출품된다. 미국 미술관이 이미 소장해온 한국 미술과 한국 개인 컬렉션이 만난다는 점에서 단순한 해외 대여전과도 성격이 다르다.
작품 사이의 외형적 유사성만 강조하면 한국 미술의 제작 배경과 작가별 차이는 흐려질 수 있다. 박래현의 작업을 서구 추상의 대응물로, 윤형근의 회화를 색면회화의 한 갈래로만 설명할 경우 한국 미술사 안에서 형성된 맥락이 줄어든다. 작품의 제작 연도와 재료, 작가의 활동 시기, 한국 미술계 안에서의 위치를 함께 제시해야 200점의 병치가 형식 비교를 넘어설 수 있다.
전시명 ‘Between You and Me’는 소장자와 작품, 작품과 관객 사이에 형성되는 관계를 담았다. RM 컬렉션과 SFMOMA 소장품을 한 공간에 배치해 한국과 미국, 근대와 동시대의 작품을 함께 살피는 구성이다. 작품별 배치와 해설에는 서로 다른 두 컬렉션을 연결한 기준이 구체적으로 드러난다.
미술 도서 4000권에서 SFMOMA 전시까지
RM의 미술 관련 활동은 개인적인 관람 기록에만 머물지 않았다. 2020년 국립현대미술관문화재단을 통해 1억원을 기부해 한국 미술 도서 4000권의 제작과 보급을 지원했다. 도서는 전국 400곳의 공공도서관과 도서산간지역 초·중·고교 도서관에 전달됐다.
당시 제작 대상에는 김환기, 유영국, 박래현, 윤형근, 이중섭, 변월룡, 이승조의 작가 도록이 포함됐다. 김환기·유영국·박래현·윤형근은 6년 뒤 SFMOMA 전시 명단에도 이름을 올렸다. 미술 도서를 통해 한국 작가를 접할 기회를 넓혔던 활동이 개인 소장품의 미술관 공개와 공동 기획으로 이어지는 흐름이다. 다만 이번 전시의 작품 선정과 2020년 도서 지원 사이에 직접적인 기획 연계가 발표된 것은 아니다.
2020년에는 미술관에 접근하기 어려운 청소년과 지역 독자가 한국 미술 도서를 접하도록 하는 데 지원이 쓰였다. 2026년에는 미국 미술관 관객이 RM 컬렉션에 포함된 한국 작품을 직접 만나게 된다. 활동의 무대는 국내 도서관에서 해외 미술관으로 넓어졌고, RM의 위치도 후원자에서 전시 공동 기획자로 달라졌다.
서울과 샌프란시스코, 미술관 협력 확대와 겹친 개막
SFMOMA와 국립현대미술관은 2026년 4월 특별전과 소장품 순회전, 공동 연구, 교육 프로그램의 협력 가능성을 담은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서울과 샌프란시스코의 자매도시 결연 50주년에 맞춰 두 기관이 한국과 미국의 현대미술 교류를 확대하기로 한 협약이다. ‘RM x SFMOMA’와는 별도로 추진된 기관 간 협력이지만, 한국 미술을 둘러싼 SFMOMA의 움직임이 같은 해 이어지고 있다는 점은 눈여겨볼 만하다.
RM 전시는 미술관과 대중음악 산업의 협업 구조도 갖췄다. SFMOMA가 전시를 주최하고 빅히트 뮤직, 하이브, 하이브 인사이트가 파트너로 참여한다. 삼성전자가 주요 후원을 맡았으며 한국국제교류재단도 후원 기관에 포함됐다. 세계적인 음악가의 인지도, 미술관의 소장품과 학예 인력, 한국 기업과 공공기관의 후원이 결합한 국제 전시다.
RM의 이름은 기존 미술관 관객 밖에 있던 방문객을 끌어들일 수 있다. SFMOMA는 일반 관람권과 별도로 전시 기간 반복 관람할 수 있는 ‘앙코르 패스(Encore Pass)’도 판매한다. 대중음악 공연에서 사용하는 ‘앙코르’라는 명칭을 미술관 관람권에 적용한 운영 방식은 팬덤 관객의 재방문까지 고려한 구성으로 읽힌다.
미술관이 맡아야 할 몫은 RM의 인지도를 작품 감상으로 전환하는 일이다. 한국 작가의 생애와 작품 제작 배경, 전후 한국 미술의 변화, 동시대 작가로 이어지는 흐름이 전시장 안에서 충분히 설명돼야 한다. 200점의 수량과 참여 작가의 명성보다 작품 사이의 연결 근거가 분명할수록 개인 컬렉션 공개전의 범위를 넘어선다.
‘RM x SFMOMA: Between You and Me’는 2026년 10월 3일부터 2027년 2월 7일까지 SFMOMA 7층에서 열린다. 회원 사전 관람은 10월 1일부터 3일까지 진행된다. 회원 선예매는 8월 4일, 일반 관람권과 앙코르 패스 판매는 8월 11일 시작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