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란 머리를 채운 꽃과 다채로운 꽃다발, ‘행복’이 내면의 감정에서 주변으로 확장되는 흐름
[KtN 박준식기자]붉은 바탕 위에 노란 머리의 여성이 자리한다. 품에는 빨강과 노랑, 초록, 보라, 분홍이 뒤섞인 꽃다발이 안겨 있고, 얼굴을 둘러싼 커다란 머리 역시 수많은 꽃으로 가득하다. 머리 왼쪽에서는 노란 꽃과 나비를 닮은 작은 형태들이 붉은 공간으로 흩어진다. 인물 안에 머물던 감정이 꽃을 매개로 몸 밖까지 넓어지는 구성이 2017년작 ‘행복’의 중심을 이룬다.
구승희의 ‘행복’은 장지 채색, 99×66cm로 제작됐다. 앞서 2014년 ‘순간’에서 거대한 노란 머리와 눈동자, 옷의 꽃무늬가 인물 안쪽에 응축돼 있었다면, ‘행복’에서는 꽃의 비중과 활동 범위가 크게 달라진다. 머리카락 자체가 꽃의 집합으로 변하고, 품에는 여러 색의 꽃이 모이며, 일부 꽃은 인물의 몸을 벗어나 붉은 공간으로 퍼진다. 구승희 회화에서 꽃이 장식적인 문양을 넘어 행복을 운반하는 조형 요소로 확장되는 흐름을 살필 수 있는 작품이다.
가장 큰 변화는 노란 머리에서 나타난다. 구승희의 노란 곱슬머리는 육아와 작업을 병행하던 시기 쌓였던 복잡한 심리를 반복되는 선으로 풀어내면서 시작됐다. 작가가 조급함과 복잡한 마음을 담았던 형태를 관람객은 밝고 긍정적인 이미지로 받아들였고, 이후 노란 머리는 작업을 대표하는 요소로 자리 잡았다.
‘행복’에서는 노란 머리를 이루는 반복이 한 단계 달라진다. 멀리서는 하나의 커다란 황금빛 덩어리처럼 보이지만 가까이에서는 해바라기를 연상시키는 꽃과 작은 꽃잎, 세밀한 선이 촘촘하게 중첩돼 있다. 머리를 채우던 곡선의 반복이 실제 꽃의 형상과 결합하면서 생각과 감정이 보다 구체적인 생명 형태를 얻는다.
머리카락과 꽃의 경계가 흐려진 것도 눈여겨볼 부분이다. 노란 머리 안에서 꽃을 따로 떼어내기 어려울 만큼 두 요소가 겹쳐 있다. 머리가 꽃으로 피어났다고 읽을 수도 있고, 꽃들이 모여 하나의 거대한 머리를 이루었다고 볼 수도 있다. 구승희 작품에서 반복되는 여성형 존재가 일상의 작은 행복과 결합하면서 하나의 생명성을 얻어가는 과정이 이 지점에서 구체적으로 드러난다.
품에 안은 꽃다발은 노란 머리와 다른 색채 구조를 갖는다. 머리가 노란색을 중심으로 하나의 큰 덩어리를 만든다면 꽃다발에는 여러 색이 뚜렷하게 나뉘어 들어 있다. 구승희는 큰 꽃을 사람마다 서로 다른 ‘행복의 색깔’과 연결해 설명해왔다. ‘행복’의 꽃다발은 바로 그 차이를 한데 모은다. 크기도 색도 다른 꽃들이 같은 품 안에 자리하면서 행복을 하나의 색과 모습으로 규정하지 않는다.
꽃다발의 위치도 중요하다. 인물은 꽃을 머리 위에 장식하거나 멀리 바라보지 않는다. 몸 가까이에 품고 있다. 꽃다발은 얼굴 아래에서 상반신 상당 부분을 차지하며 인물과 거의 하나의 덩어리처럼 붙어 있다. 행복을 외부에서 바라보는 대상보다 몸 가까이 받아들이고 품은 상태로 옮긴 구성이다.
작품 제목이 ‘행복’이라는 점도 이런 상태와 맞물린다. ‘행복으로’처럼 이동의 방향을 붙이지 않았고 ‘기쁨가득’처럼 양을 강조하지도 않았다. 하나의 명사 ‘행복’을 그대로 제목으로 놓았다. 인물의 머리와 품, 주변 공간을 꽃으로 채우면서 행복이라는 감정을 별도의 설명 없이 하나의 상태로 제시한 셈이다.
인물 왼쪽에서 붉은 공간으로 흩어지는 작은 형태는 작품의 흐름을 다시 바깥으로 돌린다. 꽃다발에 모여 있던 꽃, 머리를 구성하는 꽃과 달리 일부 작은 꽃과 나비를 닮은 형태는 인물에게 붙어 있지 않다. 머리 주변에서 떨어져 나와 위와 왼쪽으로 흩어지면서 비어 있던 붉은 공간에 새로운 밀도를 만든다.
행복을 ‘품는 것’에서 끝내지 않는 흐름이다. 몸 가까이에 모은 꽃은 머리에서 증식하고 일부는 다시 주변으로 퍼진다. 한 사람의 내면과 몸에 축적된 행복이 다른 공간으로 이동하는 과정으로 읽을 수 있다. 이후 ‘담아서’에서 손에 모인 작은 꽃이 바깥으로 흩어지고, ‘행복으로’에서 꽃의 흐름이 초승달과 넓은 공간까지 확장되는 조형적 변화의 앞단도 이 작품에서 찾을 수 있다.
눈동자는 꽃의 확산과 다른 방식으로 인물의 내부를 붙잡는다. 코와 눈썹의 표현은 거의 사라지고 눈은 크게 남았다. 눈동자 안에는 식물과 꽃잎을 연상시키는 짙은 결정 형태가 들어 있으며, 노란 바탕과 검은 문양이 강한 대비를 만든다. 구승희는 눈을 내면의 진심이 드러나는 부분으로 받아들였고, 긍정적인 생각과 마음을 시각화하기 위해 결정 이미지를 눈동자 안에 끌어왔다.
눈동자 속 결정은 긍정적인 생각과 내면의 진심을 시각화하기 위해 선택한 조형적 모티프다. ‘행복’에서는 눈 안의 작은 형태와 머리를 가득 메운 꽃이 서로 다른 크기로 대응한다. 눈에서 응축된 감정이 머리에 이르러 수많은 꽃으로 증식하고, 다시 인물 바깥으로 흩어진다는 흐름이 만들어진다.
2014년 ‘순간’과 나란히 놓으면 변화가 더 선명해진다. ‘순간’에서는 노란 머리가 거대한 감정의 영역으로 남아 있었고 꽃은 머리 한쪽과 옷의 문양에 제한적으로 자리했다. 3년 뒤 ‘행복’에서는 꽃이 머리 전체를 점유하고, 품 안에 대형 꽃다발이 등장하며, 일부 꽃은 인물 밖으로까지 나간다. 감정이 머리 안에 응축된 상태에서 꽃이라는 구체적인 형태를 얻어 공간으로 번지는 쪽으로 이동한 것이다.
붉은 바탕도 이런 확산을 선명하게 받쳐준다. 노란 머리와 붉은 공간의 대비가 강하고, 다채로운 꽃다발까지 더해지면서 색의 충돌이 작품 전면으로 나온다. 여백처럼 남겨진 왼쪽의 붉은 영역에도 작은 꽃과 나비 형태가 흩어져 있어 완전히 비어 있는 곳은 거의 없다. 구승희가 빈 곳에 작은 형태를 반복해서 더해가는 ‘채움’의 방식이 인물 내부에서 주변 공간으로 넓어지고 있다.
채움은 구승희의 제작 태도와도 연결된다. 넓은 면을 한 번에 끝내기보다 옷의 문양과 머리의 곡선, 작은 꽃을 반복해서 더하는 방식을 오랫동안 이어왔다. 작가는 이런 세밀한 반복이 자신의 성향과 맞는다고 설명했다. ‘행복’에서는 채움의 대상이 머리, 옷, 꽃다발, 주변 공간으로 동시에 확대된다. 작가가 들인 시간만큼 작품 속 행복의 밀도도 함께 높아지는 구조다.
‘행복’에서 꽃은 서로 다른 세 가지 상태로 존재한다. 머리에서는 한 생명을 구성하는 일부가 되고, 품에서는 여러 색의 행복이 모인 꽃다발이 되며, 주변에서는 자유롭게 흩어지는 작은 존재가 된다. 같은 꽃이지만 위치에 따라 축적과 소유, 확산이라는 서로 다른 역할을 맡는다.
구승희 회화의 행복도 한곳에 멈추지 않는다. 작은 일상에서 발견되고, 한 사람 안에 쌓이고, 다시 주변으로 번진다. 2017년 ‘행복’은 그 흐름 가운데 ‘축적된 행복이 꽃의 형태를 얻기 시작한 시기’를 보여주는 작업으로 읽힌다.
머리카락까지 꽃이 되고, 품은 서로 다른 색의 꽃으로 채워졌으며, 남은 꽃들은 붉은 공간으로 흩어진다. 행복을 설명하는 문장은 작품 안에 없지만, 꽃이 놓인 위치와 밀도, 이동만으로 감정의 방향이 만들어진다.
‘행복’에서 구승희가 그린 것은 꽃을 든 한 여성만이 아니다. 일상의 작은 감정이 한 존재 안에서 생명력을 얻고, 그 생명력이 다시 주변으로 번져나가는 과정이다. 2014년 ‘순간’에서 머릿속에 머물던 움직임은 2017년 ‘행복’에서 꽃으로 피어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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