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틸리티·점프수트·드레스를 한 흐름에 배치…격식보다 실제 착용 범위를 넓힌 레이첼 스콧의 2027년 봄
[KtN 박인경기자]프로엔자 스쿨러(Proenza Schouler)의 2027년 봄 컬렉션에서는 낮과 저녁을 가르던 옷의 경계가 옅어졌다. 셔츠와 베스트, 팬츠 같은 익숙한 데이웨어 사이에 드레스와 점프수트가 들어왔고, 짙은 색의 이브닝웨어도 과한 장식 대신 여유 있는 재단으로 풀었다. 레이첼 스콧(Rachel Scott)이 이번 시즌에 가져온 뉴욕의 옷입기는 옷 한 벌의 격식을 높이거나 낮추는 방식보다, 같은 옷을 더 넓은 시간대에 입을 수 있도록 비례와 소재, 겹쳐 입는 방식을 바꾸는 쪽에 가깝다.
뉴욕에서 드레스가 반드시 밤의 옷일 필요는 없고, 평범한 옷도 저녁 자리까지 이어질 수 있다는 발상은 컬렉션 전체에 깔려 있다. 출근복과 외출복, 낮옷과 이브닝웨어를 별도의 옷장에 나누기보다 한 사람의 하루 안에서 서로 연결했다. 재킷과 팬츠에 드레스의 유연함을 더하고, 드레스에서는 격식을 상징하는 장식을 덜어냈다.
초반에 등장한 레이어드 착장은 이런 방향을 압축한다. 화이트 상의 위에 선명한 코발트 블루를 놓고, 바깥에는 밝은 옐로 톤의 긴 아우터를 겹쳤다. 하체는 어두운 팬츠로 정리했다. 색은 대담하지만 옷의 구성 자체는 현실적인 레이어링에 가깝다.
긴 아우터가 드레스처럼 몸을 감싸면서도 안쪽에는 상의와 팬츠가 남는다. 한 가지 용도로 고정하기 어려운 이유다. 아우터를 중심으로 보면 외출복의 성격이 강해지고, 안쪽의 상·하의를 중심으로 보면 낮의 옷차림에 가깝다. 한 착장 안에서 옷의 역할이 겹친다.
코발트 블루도 특별한 행사복에만 쓰이지 않았다. 강한 색을 일상적인 상의에 넣고 팬츠와 겹쳐 입으면서 색 자체의 화려함을 낮의 옷 안으로 끌어왔다. 반대로 긴 아우터는 충분한 길이를 갖췄지만 정교한 이브닝 코트처럼 무겁게 마감하지 않았다. 강한 색과 긴 길이를 평상복의 조합 안에 놓은 것이다.
레드와 베이지가 만난 착장에서는 데이웨어의 구성에 색으로 긴장감을 더했다. 붉은 상의는 허리를 정리하고, 아래에는 무릎 아래까지 내려오는 베이지 계열 하의를 연결했다. 목걸이가 길게 떨어지지만 전체 스타일을 장식적으로 끌어올리지는 않는다.
레드가 드레스 한 벌 전체를 차지했다면 이브닝웨어 쪽으로 무게가 쏠릴 수 있다. 이번에는 강한 색을 상체에만 집중하고 하체를 차분한 뉴트럴 컬러로 눌렀다. 옷의 격식을 색 하나로 결정하지 않고 조합으로 조절한 방식이다.
허리를 정리한 상의와 부드럽게 떨어지는 하의의 관계도 비슷하다. 상체에는 형태가 있지만 하체는 움직임을 남긴다. 사무복처럼 단단하게 맞춰 입지도 않고, 휴일의 캐주얼웨어처럼 완전히 풀지도 않았다. 레이첼 스콧이 말한 뉴욕식 옷입기는 이런 중간 영역을 계속 넓혀간다.
프로엔자 스쿨러 SS27에서 ‘낮’과 ‘밤’은 소재나 아이템 하나로 갈리지 않는다. 셔츠라고 해서 반드시 업무용 옷이 되는 것도 아니고, 긴 드레스라고 해서 곧바로 이브닝웨어가 되는 것도 아니다. 같은 길이와 같은 색도 무엇과 겹치고 어느 정도의 여유를 두느냐에 따라 성격이 달라진다.
화이트 셔츠와 밝은 하의 위에 카키 계열 베스트를 겹친 착장은 컬렉션에서 가장 현실적인 데이웨어에 가깝다. 소매를 걷어 올린 듯한 짧은 셔츠와 실용적인 베스트, 밝은 하의를 조합해 활동성을 앞세웠다. 선글라스와 낮은 신발까지 더해지면서 도시의 낮과 가까운 차림이 완성됐다.
주목할 부분은 이런 실용적인 옷이 컬렉션에서 별도의 캐주얼 구간으로 분리되지 않았다는 데 있다. 앞뒤로 강한 색과 드레스, 보다 유연한 실루엣이 이어지면서 베스트와 셔츠도 같은 옷장 안에 들어온다.
여성복 컬렉션에서 데이웨어와 이브닝웨어를 단계적으로 나누는 전개와는 다른 접근이다. 낮의 옷이 먼저 나오고 뒤로 갈수록 드레스의 장식과 격식이 높아지는 방식 대신 서로 다른 용도의 옷을 계속 섞었다. 옷의 서열보다 실제 착용 가능성을 앞세운 구성이다.
색의 흐름도 이런 성격을 뒷받침한다. 코발트 블루와 레드처럼 강한 색이 초반에 먼저 등장하고, 화이트와 베이지가 뒤따른다. 이후 브라운과 네이비, 블랙이 늘어나지만 어두운 색이 등장한다고 해서 곧바로 밤의 옷으로 넘어가지는 않는다. 색과 시간대의 관계를 일대일로 묶지 않은 셈이다.
네이비 점프수트는 데이웨어와 드레스의 경계가 가장 자연스럽게 겹치는 옷 가운데 하나다. 칼라와 앞여밈, 짧은 소매는 셔츠의 익숙한 구성을 따르고, 허리를 조절한 뒤 하체를 하나로 연결했다. 작업복에서 익숙한 점프수트의 실용성을 유지하면서 전체 길이와 비례를 정돈했다.
네이비 한 색으로 통일한 덕분에 옷은 단정하지만 정장처럼 보이지 않는다. 별도의 재킷이나 장식적인 액세서리가 없어도 한 벌로 마무리되고, 하체에는 걷기 좋은 여유가 남는다. 낮의 이동이 많은 일정에서 입을 수 있으면서도 셔츠와 팬츠를 따로 맞춰 입은 것보다 완결된 인상을 준다.
점프수트가 이번 컬렉션에서 중요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상의와 하의의 경계를 없앤 구조 자체가 데이웨어와 드레스 사이에 놓이기 쉽다. 소재와 네크라인을 달리하면 실용복에서 저녁 옷까지 폭넓게 이동할 수 있는 품목이다.
레이첼 스콧은 같은 점프수트를 컬렉션 후반에서 다시 전혀 다른 분위기로 가져간다. 초반의 네이비 점프수트가 셔츠의 문법을 가져왔다면 후반에는 깊은 네크라인과 느슨한 하체를 통해 드레스에 가까운 성격을 부여했다. 하나의 품목만으로도 낮과 저녁의 거리를 좁힐 수 있다는 선택이다.
오프화이트 드레스는 반대 방향에서 경계를 낮춘다. 길이는 종아리 아래까지 내려오지만 화려한 장식이나 강한 구조를 앞세우지 않는다. 목선과 소매는 간결하고 허리와 골반 주변에 잡힌 원단이 몸을 따라 자연스럽게 흐른다. 흰색 드레스가 지닌 격식을 운동화에 가까운 밝은 신발이 가볍게 눌러준다.
드레스의 길이를 줄이거나 캐주얼한 소재로 바꾸지 않아도 일상적인 인상을 만들 수 있다는 방식이다. 긴 길이와 유연한 드레이프는 그대로 두고 스타일링의 강도만 조정했다. 드레스 자체를 낮의 옷과 밤의 옷으로 미리 구분하지 않고 신발과 액세서리, 입는 방식에 따라 사용 범위를 남겼다.
이번 컬렉션에서 가운이 캐주얼하게 읽힐 수 있다는 설명도 이런 옷과 맞닿아 있다. 이브닝웨어의 요소를 제거하는 것이 아니라, 격식을 결정하던 여러 조건 가운데 일부를 풀어낸다. 긴 길이는 남기고 장식을 줄이거나, 드레이프는 유지하면서 신발을 가볍게 가져가는 방식이다.
반대로 평범한 옷을 저녁까지 가져갈 때는 장식을 많이 더하지 않았다. 선명한 색, 긴 실루엣, 몸을 따라 흐르는 소재처럼 한두 요소만으로 옷의 밀도를 높였다. 낮옷을 화려한 옷으로 바꾸기보다 낮과 저녁 사이를 자연스럽게 이동하도록 조정했다.
후반의 짙은 네이비 점프수트에서는 같은 접근이 더 분명해진다. 깊게 파인 V넥과 민소매 상체는 이브닝 드레스에서 익숙한 긴장감을 갖지만, 허리 아래는 팬츠처럼 넉넉하게 떨어진다. 상체의 노출과 하체의 실용적인 여유가 한 벌 안에 함께 들어갔다.
발목까지 이어지는 어두운 색과 깊은 네크라인만 보면 저녁 옷에 가깝지만, 과장된 장식이나 몸을 조이는 재단은 없다. 손을 넣을 수 있는 포켓과 넉넉한 하체가 점프수트의 실용성을 그대로 남긴다. 이브닝웨어가 일상복 쪽으로 이동한 결과이면서, 동시에 실용적인 점프수트가 저녁 자리까지 확장된 형태다.
초반의 셔츠형 네이비 점프수트와 후반의 깊은 V넥 점프수트를 함께 놓으면 SS27이 다룬 범위가 또렷해진다. 같은 품목을 완전히 다른 옷으로 바꾸지 않고 네크라인과 소매, 하체의 분량을 달리해 낮과 저녁의 양끝을 연결했다.
프로엔자 스쿨러의 2027년 봄 컬렉션은 옷을 시간표에 따라 나누지 않는다. 카키 베스트와 화이트 셔츠, 코발트 블루 레이어드, 네이비 점프수트, 오프화이트 드레스가 같은 옷장 안에 놓인다. 차이는 품목보다 색의 강도, 길이, 몸에 붙는 정도, 무엇과 함께 입느냐에서 생긴다.
뉴욕이라는 배경도 도시를 상징하는 문양이나 장소의 이미지보다 이런 착용 방식에서 읽힌다. 하루 동안 여러 일정과 공간을 오가더라도 옷을 완전히 갈아입지 않고 이어갈 수 있는 구성이다. 드레스에는 낮의 가벼움을 남기고, 셔츠와 점프수트에는 저녁까지 이어질 수 있는 정돈된 선을 더했다.
레이첼 스콧이 SS27에서 넓힌 것은 옷의 종류가 아니라 한 벌을 입을 수 있는 범위다. 데이웨어와 이브닝웨어를 서로 반대편에 놓지 않고 같은 옷장 안에서 거리를 좁혔다. 코발트 블루의 레이어드부터 화이트 셔츠와 베스트, 두 종류의 네이비 점프수트와 오프화이트 드레스까지 이어진 흐름은 뉴욕의 하루를 위해 옷의 쓰임을 다시 나눈 결과다.
후원=NH농협 302-1678-6497-21 위대한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