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22일 SS27 밀라노 쇼가 마지막 무대…10년 내 최고 수익성 올린 디젤, CEO 교체 이어 크리에이티브 체제도 전환
[KtN 임우경기자]디젤(Diesel)을 다시 밀라노 패션의 중심으로 불러들인 글렌 마틴스(Glenn Martens)가 6년 만에 브랜드를 떠난다. 마지막 컬렉션은 오는 9월 22일 밀라노 패션위크에서 공개하는 2027 봄·여름(SS27) 시즌이다. 2020년 10월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에 오른 뒤 데님과 스트리트웨어, 런웨이와 대중문화를 다시 묶어낸 시간이 이 쇼를 끝으로 마무리된다. 후임은 아직 발표되지 않았다.
마틴스가 OTB 그룹을 떠나는 것은 아니다. 2025년 1월 존 갈리아노(John Galliano)의 뒤를 이어 맡은 메종 마르지엘라(Maison Margiela)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직은 계속 유지한다. 디젤과 메종 마르지엘라를 동시에 맡아온 체제가 끝나고, OTB 안에서 마틴스의 역할이 메종 마르지엘라로 집중되는 구조다.
퇴임 시점은 눈여겨볼 만하다. 디젤은 흔들리는 실적을 수습하지 못한 채 디자인 수장을 교체하는 상황이 아니다. 2025년 최근 10년 가운데 가장 높은 수익성을 기록했다. OTB는 최근 몇 년간 진행한 브랜드 재정비와 투자가 성과로 이어졌다고 밝혔다. 글렌 마틴스가 떠나는 시점과 디젤의 재건 성과가 확인된 시점이 사실상 겹친다.
렌초 로소(Renzo Rosso) 디젤 창업자 겸 OTB 회장은 마틴스가 브랜드에 대한 인식을 바꾸고 젊은 세대와 강한 연결을 만들었다고 평가했다. 글로벌 패션 논의의 중심으로 디젤을 다시 끌어오면서도 브랜드가 지켜온 개방성과 에너지, 접근성을 유지했다는 설명도 내놨다.
2000년대의 디젤을 2020년대에 다시 파는 법
1978년 시작한 디젤은 오랫동안 데님 브랜드 이상의 의미를 가졌다. 청바지를 중심으로 성장했지만 1990년대와 2000년대에는 도발적인 광고와 강한 대중문화 이미지까지 함께 팔았다. 문제는 패션 소비가 빠르게 바뀐 2010년대 이후였다. 디젤이라는 이름의 인지도는 남아 있었지만, 과거의 인지도가 곧 새로운 세대의 구매 욕구를 보장하지는 않았다.
2020년 합류한 마틴스는 브랜드의 가장 오래된 자산인 데님을 버리는 대신 형태와 쓰임을 바꿨다. 낡고 찢어진 표면, 과장된 비율, 비틀린 구조, 몸을 감싸거나 뒤집는 패턴을 데님에 적용했다. Y/Project에서 발전시킨 드레이핑과 왜곡된 실루엣도 디젤의 제품군 안으로 옮겨왔다. 청바지를 기본 상품으로만 다루지 않고 컬렉션 전체의 실험 재료로 사용했다.
과거 로고와 2000년대 스타일을 그대로 복원하는 방식과도 거리를 뒀다. Y2K 유행이 전 세계 패션 시장을 휩쓴 시기에 디젤은 과거의 유산을 갖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흐름에 올라탄 것이 아니라, 기존 자산을 다시 디자인해 새로운 제품으로 내놓는 쪽을 택했다.
그 과정에서 D 로고 벨트, 미니백, 가공 데님과 강하게 노출된 로고 제품 등이 젊은 소비자에게 다시 유통되기 시작했다. 런웨이에 등장한 해체된 데님과 과장된 실루엣은 화제성을 만들었고, 판매 가능한 액세서리와 데님 제품은 브랜드 접점을 넓혔다. 실험적인 패션쇼와 상업적인 제품을 서로 분리하지 않은 전략이었다.
런웨이를 패션업계 안에서 도시 밖으로 꺼낸 6년
마틴스 시기 디젤에서 가장 크게 달라진 부분 가운데 하나는 패션쇼였다. 컬렉션 발표를 업계 관계자와 초청객만 보는 행사로 두지 않고, 일반 관객과 온라인 이용자를 적극적으로 끌어들였다.
2022년 밀라노에서는 대규모 일반 관객을 쇼에 초대했고, 이후에도 패션쇼 규모와 접근 방식을 계속 바꿨다. 2023년에는 거대한 콘돔 상자 더미를 설치한 무대를 만들었고, 2024년에는 쇼 준비 과정을 온라인으로 공개했다. 의상만 공개하는 자리가 아니라 매 시즌 디젤이라는 이름을 다시 소비하게 만드는 행사로 패션쇼의 기능을 넓혔다.
2025년 9월 SS26 시즌에는 방식이 더 달라졌다. 55개 룩을 밀라노 곳곳의 투명 구조물에 배치하고 참가자가 도시를 이동하며 찾아보도록 했다. 사전 등록 참가자가 3000명을 넘었고, OTB는 해당 행사를 밀라노 패션위크에서 진행한 디젤 최초의 완전 공개형 쇼로 설명했다. 패션쇼의 좌석 등급보다 도시 안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이 컬렉션에 접근하느냐에 무게를 둔 구성이었다.
디젤이 오랫동안 내세워 온 ‘대중성’도 새로운 형태를 얻었다. 럭셔리 브랜드처럼 패션위크의 화제성을 확보하면서, 소비자에게는 고가 럭셔리 하우스와 다른 위치를 강조했다.
렌초 로소는 올해 1월 안드레아 리골리오시(Andrea Rigogliosi)를 디젤 CEO로 선임하면서 브랜드를 ‘럭셔리 세계의 대안’으로 표현했다. 포용성과 접근성을 함께 강조했다. 디젤이 마틴스 체제에서 택한 위치를 가장 직접적으로 설명하는 표현이기도 하다.
명품 가격이 지속적으로 높아지는 시장에서 디젤은 런웨이의 문화적 영향력은 가져가되, 전통적인 럭셔리 하우스와 똑같은 방식으로 움직이지 않는 길을 택했다. 브랜드가 가진 데님 역사와 대중성을 포기하지 않으면서 패션위크에서 존재감을 회복하는 전략이었다.
‘화제성’에서 ‘수익성’까지 간 디젤
브랜드 재정비가 이미지 변화에만 머물렀다면 마틴스의 퇴임은 다른 의미로 읽혔을 가능성이 크다. 2025년 실적은 디젤의 변화가 사업 지표까지 이어졌다는 점을 보여준다.
OTB 그룹의 2025년 매출은 17억 유로로 전년보다 고정환율 기준 4.8% 감소했다. 순매출도 16억 유로로 5% 줄었다. 그룹 전체가 성장한 해는 아니었다. 그 안에서 디젤은 최근 10년 가운데 가장 높은 수익성을 기록했다.
도매 시장은 같은 해 14.7% 감소했고, OTB는 매장망도 다시 정비했다. 49개 매장을 새로 열면서 58개를 닫았고 일부 점포는 위치를 옮겼다. 무조건 매장 수를 늘리기보다 직접 유통과 주요 지역에 대한 투자를 조정한 해였다. 디젤은 베를린과 서울에 주요 플래그십을 열었다.
서울에서는 한남동에 브랜드의 대형 플래그십을 마련했다. OTB는 한남 매장을 패션과 디자인, 글로벌 트렌드를 결합한 문화 허브로 규정했다. 한국 시장도 마틴스 이후 디젤이 추진해온 직접 유통 확대와 젊은 소비자 접점 강화의 주요 지역 가운데 하나에 포함됐다.
올해 1월에는 경영진도 바뀌었다. 미우미우와 펜디, 디올 등에서 경력을 쌓은 안드레아 리골리오시가 CEO에 올랐다. 리골리오시는 OTB 그룹 CEO 우발도 미넬리(Ubaldo Minelli)에게 직접 보고하는 구조다. 최고경영자를 먼저 교체한 데 이어 9월 이후 크리에이티브 디렉터까지 달라지면, 디젤은 사실상 경영과 디자인 양쪽에서 다음 체제로 넘어가게 된다.
마틴스를 보내는 디젤, 마틴스를 붙잡는 OTB
마틴스의 이동을 디젤 한 브랜드 안에서만 보면 6년간 함께한 디자이너의 퇴임이다. OTB 전체로 넓히면 다른 흐름이 나타난다.
OTB는 디젤뿐 아니라 메종 마르지엘라, 질 샌더(Jil Sander), 마르니(Marni), 빅터앤롤프(Viktor&Rolf) 등을 거느린 패션 그룹이다. 2025년에는 주요 브랜드의 크리에이티브 체제를 대폭 손봤다. 마틴스를 메종 마르지엘라에 배치했고, 질 샌더에는 시모네 벨로티(Simone Bellotti), 마르니에는 메릴 로게(Meryll Rogge)를 각각 선임했다.
같은 해 가장 높은 성장률을 기록한 브랜드는 메종 마르지엘라였다. 전년보다 8.4% 성장하며 OTB 브랜드 가운데 가장 큰 폭의 증가를 기록했다. 캐나다와 멕시코, 중동으로 매장을 넓혔고, 마틴스는 2025년 7월 첫 아티저널(Artisanal) 컬렉션에 이어 10월 레디투웨어 컬렉션을 공개했다.
디젤에서는 재정비 작업이 수익성 개선으로 이어졌고, 메종 마르지엘라는 그룹의 성장 브랜드로 비중을 높이고 있다. 마틴스가 OTB를 떠나지 않고 메종 마르지엘라에 남는다는 결정은 두 브랜드의 현재 위치와 맞물려 있다.
OTB 입장에서도 디젤에서 축적한 마틴스의 영향력을 그룹 밖으로 내보내는 대신, 성장세가 강한 럭셔리 브랜드 안에 유지하는 구조가 됐다. 디젤은 새 디자인 수장을 찾고, 마틴스는 메종 마르지엘라에서 두 번째 해를 이어간다.
디젤의 다음 6년, ‘마틴스 이후’가 더 까다로운 이유
새 크리에이티브 디렉터가 받게 될 디젤은 2020년의 디젤과 다르다. 브랜드 인지도를 다시 만들어야 하는 단계는 상당 부분 지나갔다. 최근 10년 중 가장 높은 수익성을 기록했고, 밀라노 패션위크에서 지속적으로 화제를 만드는 브랜드가 됐으며, 서울과 베를린을 포함한 직접 유통망 투자도 이어지고 있다.
후임 디자이너에게는 다른 부담이 생긴다. 마틴스가 구축한 디자인 언어를 그대로 반복하면 디젤이 한 디자이너의 스타일에 머물 가능성이 있고, 반대로 급격하게 방향을 틀면 지난 6년간 만들어 놓은 젊은 소비자와의 연결을 흔들 수 있다.
특히 디젤의 현재 위치는 전통적인 럭셔리와 대중 패션의 중간에서 형성돼 있다. 가격을 끌어올려 럭셔리 하우스와 같은 방향으로 가는 방식도, 과거의 데님 브랜드로 돌아가는 방식도 지금의 디젤과는 차이가 있다. 렌초 로소가 강조한 ‘럭셔리의 대안’이라는 위치를 새 크리에이티브 체제가 제품과 가격, 매장, 패션쇼에서 어떻게 이어갈지가 향후 브랜드 운영의 주요 변수가 된다.
마틴스 개인에게도 무게중심이 달라진다. Y/Project를 떠난 뒤 디젤과 메종 마르지엘라를 동시에 맡았던 구조에서 벗어나, 패션사적으로 훨씬 복잡한 유산을 가진 메종 마르지엘라 한 곳에 집중하게 됐다. 지난해 첫 아티저널 컬렉션을 시작으로 마틴스가 마르지엘라에서 구축할 장기적인 디자인 언어도 이제 본격적으로 축적될 수 있다.
9월 22일 밀라노에서 열리는 SS27 쇼는 그래서 한 디자이너의 고별 컬렉션만으로 끝나지 않는다. 2020년 시작한 디젤의 재건 작업을 어디까지 완성했는지 보여주는 마지막 컬렉션이자, 새 CEO 체제에 들어간 디젤이 다음 디자인 수장에게 어떤 브랜드를 넘길지를 확인하는 출발점이 된다.
후임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는 공개되지 않았다. 디젤은 차기 크리에이티브 체제를 추후 발표할 예정이다. 최근 10년 중 가장 높은 수익성을 기록한 뒤 디자인 수장을 바꾸는 디젤과, OTB 브랜드 가운데 가장 높은 성장률을 기록하며 마틴스를 전담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맞게 된 메종 마르지엘라. 마틴스의 6년은 9월 22일 밀라노에서 끝나지만, OTB 안에서 시작된 브랜드 재배치는 그 이후부터 더 분명해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