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유화에 담긴 흰 모자와 연두색 옷, 서로 다른 방향으로 나뉜 얼굴…가족의 초상에서 기억과 시간의 회화로 확장된 인물 표현
[KtN 박준식기자]Yuristanbek Shygaev의 2003년작 ‘알림칸(Alymkan)’에는 흰 모자를 쓰고 연두색 옷을 입은 젊은 여성이 두 손을 모은 채 서 있다. 얼굴은 서로 다른 방향을 향하는 두 형상이 겹쳐진 듯 구성돼 있다. 왼쪽에는 아래로 내려뜬 눈과 검은 머리카락이, 오른쪽에는 길게 뻗은 코와 작은 입이 나타난다. 흰 모자의 넓은 챙 아래에서 얼굴의 윤곽이 갈라지고, 뒤편에는 회색과 녹색, 붉은색의 거친 색면들이 이어진다.
쉬가예프는 딸 알림칸의 모습을 한 사람의 초상 안에 여러 시선과 형태가 공존하는 방식으로 표현했다. 얼굴의 양쪽을 다르게 구성하고 신체의 세부를 간결하게 정리하면서 인물의 내면과 시간의 흐름을 연상시키는 공간을 만들었다. 연두색 옷과 흰 모자는 인물의 존재감을 강조하고, 주변의 불규칙한 색면들은 초상에 복합적인 분위기를 더한다.
흰 모자는 인물의 얼굴 위에서 넓게 펼쳐져 있다. 모자의 윗부분은 둥근 사각형에 가까운 형태로 솟아 있으며, 흰색과 회색의 두꺼운 물감이 겹쳐 있다. 챙은 왼쪽으로 길게 뻗었다가 오른쪽으로 둥글게 휘어진다. 모자의 표면에는 회색과 노란색의 짧은 붓질이 남아 있고, 가장자리에는 밝은 흰색이 두껍게 칠해져 있다.
모자의 챙 아래에는 두 얼굴을 연상시키는 형태가 겹쳐 있다. 왼쪽 얼굴은 회색과 흰색의 밝은 색면으로 표현됐으며 눈은 아래로 길게 내려뜬 모습이다. 눈썹과 눈꺼풀은 검은색의 짧은 선으로 정리됐고, 코와 입의 일부는 주변의 색채와 섞여 있다. 얼굴 아래에는 검은 머리카락이 길게 내려오며 인물의 목과 어깨 부근까지 이어진다.
오른쪽 얼굴은 연한 회색과 황록색의 색면으로 이루어져 있다. 코는 길고 뚜렷한 선으로 표현됐고, 눈은 작은 곡선으로 그려졌다. 입술에는 붉은색과 보라색이 섞인 짧은 선이 놓여 있다. 오른쪽 얼굴의 윤곽은 모자의 챙과 연결되며, 아래쪽에서는 연두색 옷과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두 얼굴의 형태는 서로 다른 방향을 향한다. 왼쪽은 아래로 내려뜬 눈과 어두운 머리카락을 중심으로 구성됐고, 오른쪽은 코와 입술의 선이 강조돼 있다. 얼굴의 중심선이 명확하게 나뉘면서 하나의 인물 안에 서로 다른 표정과 시선이 공존한다. 이러한 구성은 초상에 정적인 분위기와 함께 미묘한 긴장감을 만든다.
인물의 목과 어깨 아래에는 밝은 연두색의 옷이 넓게 펼쳐져 있다. 옷은 목을 감싸는 높은 칼라를 지니고 있으며, 어깨에서 가슴과 허리로 이어지는 부분은 비교적 단순한 형태로 정리됐다. 연두색과 노란색이 섞인 넓은 색면은 작품에서 가장 밝고 강한 색채 영역 가운데 하나다.
옷의 표면에는 회색과 흰색, 황록색의 거친 붓질이 남아 있다. 가슴 중앙에는 회색과 갈색이 섞인 작은 사각형이 자리하고, 그 아래에는 흰색과 갈색의 짧은 흔적이 나타난다. 작은 사각형은 넓은 연두색의 면에서 시선을 모으는 요소로 작용한다. 주변의 밝은 색채와 대비되는 어두운 색면이 인물의 몸 중앙에 작은 변화를 만든다.
인물의 양팔은 아래로 내려와 허리 앞에서 만난다. 왼팔은 몸의 왼쪽을 따라 길게 내려오고 오른팔은 옷의 오른쪽 가장자리에서 아래로 이어진다. 두 손은 허리 아래에서 가볍게 겹쳐 있으며, 손가락은 검은색과 회색의 가는 선으로 표현됐다. 손의 자세는 인물의 차분한 분위기를 강조한다.
손과 팔의 색채는 옷보다 어둡다. 연한 갈색과 회색, 녹색이 겹쳐 있으며 일부에는 검은색의 짧은 선들이 남아 있다. 밝은 연두색 옷과 대비되는 팔의 색채는 인물의 신체를 분명하게 구분한다. 두 손이 만나는 부분에는 밝은 흰색과 회색이 겹쳐 있어 손가락의 형태가 더욱 뚜렷하게 드러난다.
인물의 뒤편에는 회색과 녹색, 붉은색의 색면들이 불규칙하게 펼쳐져 있다. 왼쪽에는 회색과 검은색이 섞인 넓은 영역이 자리하고, 아래쪽에는 흰색과 청록색의 거친 붓질이 이어진다. 오른쪽에는 녹색과 회색의 곡선이 겹쳐 있으며 상단에는 붉은색의 둥근 형태가 나타난다.
오른쪽 상단의 붉은색은 작품 전체에서 중요한 색채 요소다. 회색과 녹색의 바탕 위에 붉은색이 둥글게 겹쳐 있으며, 내부에는 어두운 갈색과 검은색의 흔적이 남아 있다. 붉은색의 형태는 인물의 흰 모자와 가까운 위치에 놓여 있어 밝은 흰색과 강한 대비를 이룬다.
인물의 왼쪽 아래에는 검은색과 회색의 넓은 색면이 펼쳐져 있다. 그 위에는 흰색과 연두색, 청록색의 거친 붓질이 겹쳐 있으며, 일부는 수평으로 길게 이어진다. 어두운 색면과 밝은 붓질이 교차하면서 작품 하단에 무게감을 만든다.
오른쪽 아래에는 녹색과 청록색이 섞인 영역이 자리한다. 회색과 흰색의 짧은 붓질이 이어지고, 일부에는 붉은색과 갈색의 작은 흔적들이 나타난다. 인물의 연두색 옷과 비슷한 색채가 배경에도 반복되면서 인물과 주변 공간이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알림칸’에서 가장 중요한 조형적 특징은 얼굴의 분할이다. 하나의 모자 아래에 서로 다른 방향을 향한 얼굴이 겹쳐 있고, 눈과 코, 입의 위치가 각각 다르게 구성됐다. 왼쪽 얼굴의 아래로 내려뜬 눈과 오른쪽 얼굴의 긴 코, 작은 입은 서로 다른 표정과 시선을 만든다. 인물의 얼굴이 하나의 고정된 모습보다 복합적인 형태로 나타나는 것이다.
쉬가예프는 1990년대부터 인물의 얼굴과 신체를 변형하는 회화를 발전시켰다. 1997년 ‘자밀라’에서는 두 얼굴이 서로 겹쳐지고 분홍빛 새가 날개를 펼쳐 인물의 몸 앞을 가로질렀다. 얼굴의 중첩과 동물의 형상이 결합하면서 인물의 감정과 기억을 연상시키는 구성이 만들어졌다. ‘알림칸’에서는 두 얼굴의 중첩이 더욱 직접적으로 드러나며 초상 자체의 구조를 이룬다.
2002년 ‘나의 딸 알림칸’에서는 딸의 모습이 전혀 다른 방식으로 표현됐다. 붉은 원뿔형 모자를 쓴 소녀가 중앙에 서 있었고, 몸은 집을 닮은 기하학적 구조로 이어졌다. 오른쪽에는 말의 머리가 다가와 있었으며 아래쪽에는 두 동물이 서로 반대 방향을 향했다. 가족의 초상이 자연과 동물, 생활문화의 상징적인 요소들과 결합한 작품이었다.
2003년 ‘알림칸’에서는 딸의 얼굴과 신체가 작품의 중심을 차지한다. 붉은 원뿔형 모자 대신 흰색의 넓은 모자가 등장하고, 길게 변형된 기하학적 몸은 밝은 연두색의 옷으로 바뀌었다. 인물의 얼굴에는 두 개의 시선이 겹쳐 있으며, 주변에는 회색과 녹색, 붉은색의 불규칙한 색면들이 펼쳐져 있다. 같은 인물을 다루면서도 서로 다른 조형적 구성을 선택한 것이다.
2002년 작품에서 알림칸은 말과 동물, 집을 닮은 구조와 함께 등장했다. 2003년 작품에서는 인물의 얼굴과 손, 옷의 형태가 더욱 구체적으로 표현된다. 딸의 모습이 상징적인 공간에서 개인의 초상으로 이동하면서 쉬가예프의 인물 표현은 또 다른 방향으로 전개됐다.
‘알림칸’의 얼굴은 인물의 내면을 표현하는 중심 요소다. 두 얼굴의 눈매와 윤곽이 다르게 구성되면서 하나의 인물 안에 서로 다른 표정이 나타난다. 왼쪽 얼굴은 아래로 내려뜬 눈과 검은 머리카락이 강조되고, 오른쪽 얼굴은 길게 이어진 코와 작은 입술이 중심을 이룬다. 서로 다른 얼굴의 결합은 시간의 흐름 속에서 변화하는 인물의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작품의 색채도 이러한 복합적인 인물 표현과 연결된다. 밝은 연두색의 옷은 인물의 몸을 넓게 차지하고, 흰 모자는 얼굴 위에서 강한 존재감을 드러낸다. 주변의 회색과 녹색, 붉은색은 불규칙하게 겹쳐 있으며 일부는 인물의 윤곽과 맞닿아 있다. 인물의 밝은 색채와 배경의 거친 색면이 대비되면서 초상의 중심이 더욱 분명해진다.
쉬가예프는 ‘알림칸’에서 얼굴의 중첩과 색채의 대비, 거친 붓질을 함께 사용했다. 흰 모자와 연두색 옷은 인물의 형태를 명확하게 드러내고, 두 얼굴의 분할은 초상에 복합적인 시선을 더한다. 주변의 불규칙한 색면들은 인물의 윤곽과 맞닿으면서 작품 전체에 움직임을 만든다.
2003년의 ‘알림칸’은 쉬가예프가 가족의 초상을 통해 인물의 모습을 새롭게 구성한 작품이다. 2002년 ‘나의 딸 알림칸’에서 딸의 몸이 집과 동물의 형상으로 확장됐다면, 2003년 ‘알림칸’에서는 얼굴의 중첩과 손의 자세, 옷의 색채가 중심을 이룬다. 두 작품은 같은 인물을 다루면서도 상징적 형상과 개인의 초상이라는 서로 다른 표현을 보여준다.
흰 모자 아래에서 서로 다른 방향을 향하는 두 얼굴, 밝은 연두색의 옷과 허리 앞에서 모은 두 손은 ‘알림칸’의 주요 조형 요소다. 주변의 회색과 녹색, 붉은색은 인물의 윤곽과 겹치며 복합적인 공간을 만든다. 쉬가예프는 딸의 모습을 통해 한 인물 안에 공존하는 여러 표정과 시선을 표현하고, 가족의 초상을 기억과 시간의 감각이 겹쳐진 회화로 발전시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