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시간 패션 행사에서 현대미술·음악·영상으로 영역 넓혀…아트 바젤 파리와 나란히 열린 첫 프랑스 행사
[KtN 김성은기자]2026년 10월, 프랑스 파리에서는 세계적인 아트페어와 독립 문화축제가 같은 시기에 열린다. 23일부터 25일까지 그랑팔레(Grand Palais)에서 개최되는 '아트 바젤 파리(Art Basel Paris)'에는 41개 국가와 지역에서 211개 갤러리가 참가한다. 파리 곳곳에서는 또 다른 문화행사 'REFERENCE FESTIVAL'이 19일부터 25일까지 이어진다.
독일 베를린에서 출발한 REFERENCE FESTIVAL이 파리에서 행사를 개최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주제는 독일어로 '자유로운 예술' 또는 '순수예술'을 뜻하는 'FREIE KUNST'다. 도버 스트리트 마켓 파리(Dover Street Market Paris), 레퍼런스 살롱(Reference Salon), 실렌시오(Silencio), 아랍세계연구소(Institut du Monde Arabe) 등에서 설치미술과 공연, 영화 상영, 토론이 진행된다.
행사는 패션 브랜드의 홍보와 커뮤니케이션을 전문으로 하는 레퍼런스 스튜디오(Reference Studios)가 주최한다. 패션계에서 구축한 창작자 네트워크를 바탕으로 시작한 축제가 국제 미술시장의 주요 행사 기간에 파리로 진출했다는 점에서 7년간 달라진 프로그램과 운영 방식에 관심이 모인다.
베를린의 주차장, 패션 행사와 미술 전시의 경계를 허물다
2019년 5월 베를린 노이쾰른(Neukölln)의 주차장에서는 일반적인 패션위크와 다른 행사가 열렸다. 약 40개 팀이 설치작품과 영상, 퍼포먼스, 음악 공연, 토론에 참여했다. 행사는 24시간 동안 이어졌고 일반 관객에게 무료로 개방됐다.
꼼데가르송(Comme des Garçons)은 향수 'Clash'와 관련된 영상을 선보였고, 한국 아이웨어 브랜드 젠틀몬스터(Gentle Monster)는 설치작품으로 참여했다. 디자이너 매튜 윌리엄스(Matthew Williams)는 아티스트 하루카 히라타(Haruka Hirata)와 일본식 꽃꽂이를 활용한 퍼포먼스를 진행했다.
디자이너 마틴 로즈(Martine Rose), 사진가 맷 램버트(Matt Lambert), 큐레이터 한스 울리히 오브리스트(Hans Ulrich Obrist), 패션·문화 매거진 '032c' 관계자들도 참여자 명단에 올랐다.
'Working Out Loud'를 주제로 열린 첫 행사에서는 디지털 기술과 시각문화도 다뤄졌다. 디자인 스튜디오 셀람 엑스(Selam X)는 MTV와 협업해 얼굴 필터와 증강현실 기술이 아름다움의 기준에 미치는 영향을 설치작품으로 제시했다.
참여 브랜드와 창작자들은 정해진 시간에 컬렉션을 발표하는 대신 서로 다른 형식의 작업을 한 장소에 배치했다. 패션 브랜드의 영상이 미술작품과 나란히 소개되고, 전시와 공연 사이에는 토론 프로그램이 이어졌다. 관객은 개별 작품의 관람 시간을 직접 선택하면서 행사 공간을 이동했다.
베를린의 클럽 문화와 실험적인 시각예술, 독립 패션계가 같은 장소에 모였지만 각 분야가 하나의 표현 방식으로 통합된 것은 아니었다. 패션은 브랜드 이미지와 의복을 중심으로 작동했고, 미술은 설치와 신체 표현을 활용했으며, 음악은 공연과 관객 참여를 담당했다. 분야별 작업 방식을 유지하면서 발표 공간과 관객을 공유하는 구성이었다.
2017년 설립된 레퍼런스 스튜디오의 사업 기반도 행사 성격과 연결된다. 창립자 무미 하이아티(Mumi Haiati)는 패션 브랜드와 창작자를 연결하는 커뮤니케이션 사업을 운영해 왔다. 2019년 첫 축제에는 '032c' 창립자인 외르크 코흐(Joerg Koch), 마리아 코흐(Maria Koch)도 기획에 참여했다.
패션업계의 홍보·커뮤니케이션 업무를 담당하는 기업이 예술행사의 기획과 운영까지 맡은 구조였다. 브랜드 협업으로 형성한 인적 네트워크는 참여 작가와 디자이너를 연결하는 기반이 됐다. 동시에 축제의 운영과 기업의 문화사업이 서로 분리되기 어려운 성격도 처음부터 형성됐다.
온라인 플랫폼과 패션위크 프로젝트, 달라진 운영 방식
2021년 1월 21~22일 열린 두 번째 REFERENCE FESTIVAL은 'Navigating Parallel Realities'를 주제로 진행됐다. 베를린 차이스 대형 플라네타륨(Zeiss Major Planetarium)과 레퍼런스의 전시 공간을 활용했고, 온라인 플랫폼 'Reference Realities'를 통해 프로그램을 공개했다.
현대미술가 안네 임호프(Anne Imhof)와 엘리자 더글러스(Eliza Douglas)의 퍼포먼스, 전자음악 공연, 패션 아카이브 전시 등이 편성됐다. 패션 브랜드 GmbH는 영화감독 라이너 베르너 파스빈더(Rainer Werner Fassbinder)의 1973년 작품 'Welt am Draht'에서 영감을 얻은 컬렉션 영상을 선보였다.
2019년에는 주차장이라는 물리적 공간에서의 관람 경험이 중심이었다면, 2021년에는 현장 프로그램과 온라인 공개를 병행했다. 공연과 영상, 패션 발표를 디지털 환경으로 옮기면서 현장 참석 여부에 따라 관람할 수 있는 프로그램의 범위가 달라졌다.
2024년 베를린 패션위크에서는 레퍼런스 스튜디오가 별도 프로젝트 'Intervention'을 진행했다. 노이쾰른의 옛 백화점 공간을 패션쇼와 설치작품, 팝업 프로그램을 위한 장소로 사용했다.
디자이너 셰인 올리버(Shayne Oliver)의 'Anonymous Club'과 게리트 야코프(Gerrit Jacob) 등 신진 디자이너들이 참여했다. 기존 상업시설을 임시 행사장으로 바꾸고 패션 컬렉션 발표를 독립적인 문화 프로그램과 결합하는 방식이 이어졌다.
2019년 첫 축제와 2024년 'Intervention'은 서로 다른 행사였지만 공간 활용 방식에서는 유사한 특징을 보였다. 정규 전시시설이나 전통적인 패션쇼장을 벗어나 기존 건물의 용도를 바꾸고, 패션 발표와 예술 프로그램을 함께 배치했다.
베를린에서 진행된 일련의 행사들은 레퍼런스 스튜디오가 패션 브랜드의 커뮤니케이션을 넘어 행사 기획과 문화 프로젝트 운영에 지속적으로 참여해 왔다는 점을 드러낸다. 2026년 파리 진출은 축제의 개최 도시를 바꾸는 동시에 참여 분야와 협업 기관을 확대하는 계기가 됐다.
파리의 미술관과 클럽, 패션 매장이 하나의 행사에 참여
2026년 파리 프로그램에는 현대미술가 도나 우안카(Donna Huanca), 가브리엘 모지스(Gabriel Moses), 도지 카누(Dozie Kanu), 콜랴 네모이(Kolya Nemoi), 비아르네 멜고르(Bjarne Melgaard) 등이 이름을 올렸다.
우안카는 회화와 조각, 신체 퍼포먼스, 소리 등을 활용해 작업해 왔다. 모지스는 사진과 영상에 기반을 둔 시각 작업을, 카누는 가구와 일상적인 사물의 형태를 활용한 조형 작업을 선보여 왔다. 서로 다른 매체를 다루는 작가들이 같은 축제에 참여하지만 각자의 작업 방식과 발표 공간은 구분된다.
전자음악 분야에서는 리치 호틴이 미디어아티스트 존 제라드(John Gerrard)와 공동 프로젝트를 진행한다. 24시간으로 편성된 프로그램은 디지털 설치작품과 전자음악, 라이브 공연을 결합한다.
영화와 공연 분야에서는 FKA 트위그스, 감독 조던 헤밍웨이(Jordan Hemingway), 음악가 Eartheater 등이 참여한다. 25일에는 FKA 트위그스와 조던 헤밍웨이가 함께하는 영화 상영과 대담이 예정돼 있다.
토론 프로그램에는 현대미술 기관 관계자인 클라우스 비젠바흐(Klaus Biesenbach), 크리스 더컨(Chris Dercon), 메이크업 아티스트이자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인 이사마야 프렌치(Isamaya Ffrench) 등 다양한 분야의 인물이 참여한다.
참여자들의 활동 분야는 패션, 미술, 영화, 디자인, 전자음악으로 넓게 분포한다. 일부는 개인 작품을 발표하고, 일부는 공동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문화기관 관계자들은 토론에 참여한다. REFERENCE FESTIVAL은 이러한 프로그램을 단일한 전시 형식으로 묶기보다 각각의 특성을 유지한 채 여러 장소에 배치했다.
파리에서 사용하는 공간의 성격도 서로 다르다. 도버 스트리트 마켓은 패션과 디자인을 다루는 상업공간이며, 실렌시오는 영화와 음악, 클럽 문화를 기반으로 운영된다. 아랍세계연구소는 전시와 공연, 문화 교류 프로그램을 갖춘 기관이다.
미술관이나 갤러리 한곳에서 진행되는 전시와 달리 관객은 프로그램에 따라 장소를 옮겨야 한다. 작품 감상과 공연 관람, 토론 참여가 서로 다른 입장 조건과 운영 시간에 따라 이뤄진다. 파리라는 도시 전체를 하나의 전시장으로 설정했다는 식의 설명보다 개별 공간이 어떤 프로그램을 맡고 관객을 받아들이는지가 행사 구성을 이해하는 데 더 직접적인 기준이 된다.
아트 바젤 파리와 같은 시기, 서로 다른 운영 구조
아트 바젤 파리는 10월 23일부터 25일까지 그랑팔레에서 일반 관람을 진행한다. 올해 참가 갤러리 211곳 가운데 183곳이 'Galeries', 16곳이 'Emergence', 12곳이 'Premise' 부문에 참여한다.
갤러리는 작품을 소개하고 컬렉터와 미술관 관계자, 관람객을 만난다. 신진 갤러리를 위한 별도 부문과 기획 전시, 전시장 밖의 공개 프로그램도 마련돼 있다. 아트 바젤 파리는 작품 거래와 전시, 문화행사가 함께 진행되는 국제 아트페어다.
같은 기간 열리는 REFERENCE FESTIVAL에서는 갤러리의 전시 부스보다 설치작품과 라이브 공연, 토론, 클럽 프로그램이 중심을 이룬다. 작품 거래를 전제로 운영되는 갤러리 행사와 달리 창작자들의 발표와 공연, 교류를 행사 프로그램으로 편성했다.
그러나 두 행사를 상업적 미술시장과 독립적인 예술 활동으로 단순히 구분하기는 어렵다. 아트 바젤 파리도 공공장소의 설치작품과 공연을 포함한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REFERENCE FESTIVAL 역시 브랜드 커뮤니케이션 기업이 주최하고 패션·디자인 업계의 협업 네트워크를 활용한다.
베를린시의 공적 지원도 축제 운영에 참여하고 있다. 2021년 두 번째 REFERENCE FESTIVAL은 베를린 경제·에너지·기업 담당 당국의 공동 재정지원을 받았으며, 2026년 파리 행사에도 베를린시 경제·에너지·기업부의 지원이 이어지고 있다.
패션 관련 민간기업이 운영하고 공공기관의 지원을 받는 문화행사가 국제 미술시장의 주요 일정에 맞춰 열리는 구조다. 예술가의 창작 활동과 브랜드의 문화사업, 공공 지원, 국제적인 관객 교류가 축제 운영 안에서 만난다.
무료 개방에서 사전등록·유료 행사까지, 달라진 관람 조건
2019년 베를린의 첫 행사는 무료로 일반에 개방됐다. 패션계 관계자와 일반 관객이 같은 공간에서 전시와 공연을 관람할 수 있었다.
파리에서는 프로그램에 따라 참여 조건이 달라진다. 무료 관람이 가능한 행사와 사전등록 프로그램, 초청 대상 행사, 유료 클럽 공연이 함께 편성돼 있다. 개별 프로그램의 성격뿐 아니라 입장 방식에 따라 관객의 접근 범위에도 차이가 생긴다.
전시와 공연의 장소가 여러 곳으로 분산된 만큼 관람객은 이동 시간과 프로그램별 운영 시간을 고려해야 한다. 토론 프로그램과 공연, 영화 상영은 각각 정해진 일정에 따라 진행된다. 특정 프로그램의 관람이 다른 프로그램에 대한 접근까지 보장하는 구조는 아니다.
'FREIE KUNST'가 내세운 자유로운 창작과 교류는 예술가의 활동 영역에 관한 지향이다. 관객의 참여 조건과 행사 운영 구조까지 모두 동일하다는 뜻은 아니다. 베를린의 무료 24시간 행사에서 출발한 축제가 파리에서 유료 공연과 사전등록 프로그램을 병행한다는 사실은 규모가 커진 행사 운영의 변화를 구체적으로 드러낸다.
REFERENCE FESTIVAL은 베를린에서 형성된 패션·음악·현대미술 분야의 인적 네트워크를 파리로 옮겼다. 프로그램에는 미술가와 음악가뿐 아니라 문화기관 관계자, 영화감독, 디자이너, 기술 분야 전문가까지 참여한다. 참여 분야가 늘어난 만큼 프로그램별 목적과 관객층도 세분화됐다.
10월 23일에는 문화기관과 디자인 관련 토론, 설치미술, 라이브 공연이 예정돼 있다. 24일부터 25일까지는 존 제라드와 리치 호틴의 공동 프로젝트가 이어지고, 25일에는 FKA 트위그스와 조던 헤밍웨이의 영화 프로그램이 진행된다.
2019년 노이쾰른의 주차장에서 출발한 REFERENCE FESTIVAL은 2026년 파리에서 국제 아트페어와 일정을 공유하는 문화행사로 자리 잡았다. 첫 행사에서 한 장소에 모였던 패션과 미술, 음악은 이제 여러 문화기관과 상업공간에 나뉘어 배치된다. 패션 브랜드의 협업 네트워크에서 출발한 운영 방식은 유지하면서 작품 발표의 매체와 참가자의 범위, 관람 조건은 달라졌다.
파리 본행사는 10월 22일부터 25일까지 이어진다. 주차장 한곳에서 24시간 동안 진행됐던 축제는 7년 뒤 미술시장과 문화기관, 공연장과 클럽이 밀집한 파리의 여러 장소에서 각기 다른 일정으로 운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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