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ICCA'라는 이름의 전략 사령탑
[KtN 홍은희기자] 글로벌 콘텐츠 시장이 한·일 웹툰의 양강 구도 속에 재편되고 있는 가운데, 대만 정부는 ‘정책 중심 생태계’라는 독자적 전략을 통해 제3의 축으로 부상하고 있다. 대만 웹툰의 성장은 단지 우연이 아닌, 정교하게 설계된 문화정책과 플랫폼 중심 육성 전략, 그리고 창작자 생태계의 점진적 확장에서 비롯되었다.
대만 웹툰은 2010년대 후반까지만 해도 변방에 가까웠다. 그러나 2018년 이후 대만 정부는 본격적으로 '디지털 네이티브' 콘텐츠 산업의 체질을 바꾸기 시작했다. 문화부 주도로 시작된 '웹툰 보조금' 정책은 단순한 재정 지원을 넘어, 텍스트 기반 콘텐츠를 영상·게임·굿즈 등 다양한 산업군과 연결하는 융합 창작 시스템을 구축하기 위한 인프라로 작동했다.
'TAICCA'라는 이름의 전략 사령탑
2020년 설립된 대만문화콘텐츠진흥원(TAICCA)는 정책의 교두보 역할을 맡았다. 이 기관은 산업기반 구축과 글로벌 진출 지원, 콘텐츠 IP 확장을 주도하며 문화부·과학기술부·경제부를 연계하는 크로스부처 허브로 기능하고 있다. 특히 ‘Taiwan Comic Base’의 개소는 정책의 방향성을 공간적으로 가시화했다. 이곳은 단순한 창작 공간이 아닌, 전시·강연·법률 자문까지 포함된 ‘웹툰 종합 생태계 허브’다.
TAICCA는 한국 부산정보산업진흥원(BIPA)과의 전략적 협업도 강화했다. 웹툰 창작 전문 연수과정을 공동으로 개설하고, 한국의 현업 작가들을 대만으로 초청해 크로스오버 협업을 장려했다. 이는 단순한 교육을 넘어, 한국의 산업 시스템을 대만 내에 이식하고, 나아가 창작자 간 상호학습을 가능케 하는 구조로 자리잡았다.
LINE과 CCC, 두 개의 축
플랫폼 생태계는 ‘민관협력’의 결실이라 할 수 있다. 한국 기업이 주도하는 LINE WEBTOON은 2014년 대만 진출 이후, 현재 월간 활성 사용자 수 200만 명, 누적 작품 수 800편을 기록하며 최대 플랫폼으로 성장했다. 이 중 대만 오리지널 작품만 218편(2025년 5월 기준)이며, 글로벌 진출 연재작은 전체의 23%에 달한다. ‘중개 제도’의 도입과 크로스오버 라이선스 확대 전략은 창작자의 IP 파이프라인을 안정적으로 연결시켰다.
한편, 대만 정부가 직접 운영하는 CCC 웹툰 플랫폼은 '본토 창작 진지'로 기능하고 있다. 2025년 현재 월평균 165만 조회수, 누적 회원 22만 명, 등록 작품 430편, 협력 작가 370명이라는 수치는 단순히 콘텐츠 양적 성장을 넘어 창작자 발굴-육성-유통-검증이라는 생태계 전주기를 정부 주도로 관리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장르가 말해주는 사회의 얼굴
TAICCA가 2022년 발표한 '웹툰 시청 및 소비 조사'에 따르면, 대만 웹툰 독자들의 주요 선호 장르는 판타지 모험(60%), 로맨스·코미디(40% 이상), 그리고 최근 급격히 성장한 LGBTQ+ 및 BL 장르다. 특히 CCC 플랫폼은 BL 중심 장르의 육성에 집중하며, 대만 작가의 섬세한 감정선과 서사 구조를 무기로 삼아 고정 독자층을 형성해가고 있다.
이는 단순한 소비 트렌드를 넘어, 대만 사회의 문화적 다양성과 콘텐츠 수용성, 그리고 정치적 민감성을 함축한 장르 분포로 해석할 수 있다. 타이베이 젠더 페스티벌, 무지개 행진과 같은 문화 행사들이 대중예술과의 접점을 확장하면서 웹툰 플랫폼은 일종의 ‘문화표현장’으로 작동하고 있다.
창작자 중심 생태계로 가는 길
대만 정부는 창작자의 '노동환경'까지 손보기 시작했다. CCC 웹툰은 플랫폼 내 작품별 수익 구조를 다층화하고 있으며, 쥐즈 그룹이 운영하는 플랫폼 MOJOIN은 ‘만화 도우미 보조금’ 프로그램을 신설해 만화가가 조수를 고용할 경우 일정 비용을 지원하고 있다. 이는 IP 중심 수익구조와 더불어 창작 노동의 지속가능성을 확보하는 새로운 접근이다.
또한 디지털 환경 최적화를 위해 CCC와 MOJOIN은 ‘연속읽기’, ‘자동읽기’, ‘몰입형 배경음악 기능’ 등을 잇따라 도입했다. 이는 독자의 체류시간 증가와 함께, 창작자가 독자의 반응을 실시간으로 수집하고 콘텐츠 완성도를 조율할 수 있는 구조를 가능케 한다.
대만 웹툰의 성장은 단지 작품 하나의 성공을 넘어, 창작자·플랫폼·정책이 맞물린 구조적 진화의 결과물이다. 콘텐츠 산업의 성패는 ‘개별 작품의 인기’에 있는 것이 아니라, 창작과 소비를 매개하는 시스템의 안정성과 확장성에 달려 있다는 점에서, 대만의 생태계는 지금 한국 콘텐츠 산업에 의미 있는 거울이 되고 있다.
후원=NH농협 302-1678-6497-21 위대한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