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의 뒤편에서 문인의 낙관이 증언해온 한국문화의 흔적

[KtN 박준식기자]인장을 찍는 행위는 문학 작품의 마지막 문장에 온점을 찍는 일과 다르지 않다. 한서대학교 박물관 특별전 전시실에 모인 수백 개의 문인 인장은 그 사실을 또렷하게 증명한다. 관람객은 유리 케이스에 놓인 낙관을 들여다보며 한국문학사 인물들을 떠올린다. 텍스트로만 존재하던 문인 개개인의 숨결이 돌의 재질을 타고 눈앞에 나타난다. 한서대학교 박물관이 공개한 문인 인장 전시는 한국문학을 다시 읽게 만드는 시각적 단서를 제공하고 있다.

문인의 인장은 문인의 서명이다. 그러나 문인 인장이 겨냥한 목적은 단순 신분 인증이 아니었다. 인장은 문학인 개인의 정체성을 하나의 조형 언어로 압축한 기호였다. 박목월, 조지훈, 박두진으로 대표되는 청록파 시인의 인장만 보더라도 각기 다른 미감이 즉시 감지된다. 박목월 인장은 여백이 넓고 단아한 낙관으로 정제된 서정성을 반영한다. 조지훈 인장은 균형과 반듯함이 강조된 형태로 시인이 추구한 미학적 질서가 고스란히 드러난다. 박두진 인장은 활달한 필획을 돌 표면에 남겨 자연과 생명의 기운을 시각적으로 표현한다.

문인의 인장은 작품과의 연결성을 해명하는 데 결정적 단서가 된다. 문학 텍스트는 독해에 따라 의미가 달라질 수 있지만, 인장은 문인이 직접 선택한 확정적 정체성이다. 자신을 어떤 글자로 남길 것인지, 어떤 각과 굵기, 어떤 형태를 취할 것인지 결정하는 과정은 곧 문학적 관점의 확장이다. 전시장에 모인 문인 인장들은 각기 다른 서체, 재질, 제작 시기를 통해 한 사람의 문학 세계를 문자 너머에서 해석할 기회를 제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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