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방 입력 뒤 멈춘 보고 체계, 기동대 요청 진술과 늦어진 수사가 다시 불러낸 국가 책임

이태원 참사, 국가의 부재에서 국가의 책임으로 — 이재명 대통령의 두 번 숙인 사과 사진=2025 10.29  ktv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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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tN 박준식기자]2022년 10월 29일 밤 10시 48분. 소방은 국가재난관리시스템에 ‘압사 사고 발생’이라고 입력했다. 2026년 3월 12일 열린 10·29 이태원참사 특별조사위원회 청문회는 그 뒤 행정안전부 장관에게 첫 보고가 이뤄지기까지 43분이 걸렸다고 봤다. 참사 발생 3년 4개월 만에 다시 열린 청문회는 현장 혼란만이 아니라 그 혼란이 중앙의 보고 체계에서 어떻게 멈췄는지를 정면으로 겨눴다.

청문회에서 대조된 로그와 진술은 재난 대응 체계의 공백이 현장에만 있지 않았다는 점을 드러냈다. 현장에서는 이미 다수 인명 피해가 발생하고 있었지만 중앙 상황실은 보고와 판단을 신속히 이어 붙이지 못했다. 장관 보고가 늦어진 사이 지휘 체계 전환도 늦어졌고,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가동 시점을 둘러싼 논란도 다시 불거졌다. 특조위는 참사 당일 밤 중앙재난안전상황실이 현장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면서 국가 대응이 늦어졌다고 판단했다.

청문회 첫날 가장 먼저 도마에 오른 대목은 중앙재난안전상황실의 보고 지연이었다. 특조위가 제시한 기록에 따르면 소방은 현장 상황을 시스템에 올렸고, 이후 장관 보고까지 43분이 걸렸다. 상황실 관계자들은 정보의 신뢰성을 확인하는 과정과 보고 체계의 혼선을 이유로 들었다. 반면 특조위는 재난 상황에서 초동 보고는 신속성이 우선돼야 한다고 봤다. 재난안전법이 정한 ‘지체 없는 보고’ 원칙에 비춰 볼 때 납득하기 어렵다는 지적도 이어졌다.

청문회가 다시 세운 시간표는 단순한 행정 지연으로만 보기 어려운 장면을 남겼다. 현장에서는 이미 심정지 환자가 속출했고, 소방은 상황을 명시적으로 입력했다. 그런데 중앙은 그 사실을 곧바로 장관에게 올리지 못했다. 그 사이 중앙 차원의 대응 전환은 멈췄고, 참사 초기 국가 대응의 무게중심도 현장과 중앙 사이에서 흔들렸다. 특조위는 보고가 늦어진 과정 자체가 이번 참사의 핵심 조사 대상이라고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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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대본 가동 시점도 다시 쟁점이 됐다. 정부는 참사 다음 날 새벽 중대본을 설치했다고 밝혀 왔다. 특조위 쪽에서는 실질적인 대응 전환과 본격 가동 시점은 그보다 더 늦었다는 취지로 문제를 제기했다. 청문회는 중대본 설치 시각을 둘러싼 형식과 실질의 간극, 보고와 지휘 전파 사이의 공백이 어떤 결과를 낳았는지를 따졌다. 중앙의 판단이 몇 분씩 늦어질 때 현장에서는 구조와 이송, 통제의 우선순위가 제때 정리되지 못했다는 지적도 뒤따랐다.

청문회가 드러낸 또 다른 축은 참사 이전의 예방 실패였다. 쟁점은 경비기동대 요청 여부였다. 참사 직후 경찰 수뇌부와 특별수사본부는 용산경찰서의 공식적인 기동대 지원 요청이 없었다는 취지로 결론을 냈다. 이번 청문회에서는 다른 증언이 나왔다. 당시 현장 실무자들은 인파 관리를 위해 기동대 투입을 여러 차례 요청했다고 진술했다. 구두 보고와 메신저 전달이 있었다는 설명도 나왔다. 기존 수사 결론과 배치되는 대목이다.

실무자 진술이 사실로 확인될 경우 책임 구조는 크게 달라진다. 현장 판단 미흡에 무게를 실었던 기존 수사 결론과 달리, 서울경찰청 등 상급 지휘선의 대응과 판단이 다시 조사 대상에 오를 수 있기 때문이다. 청문회에서는 참사 직후 관련 언급을 줄이거나 보고선을 관리하려 했다는 취지의 진술도 이어졌다. 기동대 요청 여부가 빠지거나 축소된 채 초기 수사가 진행된 것 아니냐는 의문도 다시 제기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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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대목에서 청문회는 수사의 빈칸을 다시 드러냈다. 참사 직후 수사는 현장 실무자의 대응 실패와 용산경찰서 단계의 문제에 초점이 맞춰졌다. 이번 청문회에서는 그보다 윗선의 보고와 결정 과정, 인력 배치 판단, 사후 기록 관리 문제까지 함께 놓고 봐야 한다는 요구가 거세졌다. 유가족과 특조위는 기동대 요청 진술, 내부 전달 경로, 참사 직후 작성된 문건과 보고 자료를 다시 대조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수사 지연 문제도 빠지지 않았다. 이재명 정부 출범 뒤 이태원참사 진상규명을 위한 검경 합동수사팀이 꾸려졌지만, 아직 뚜렷한 중간 결과는 나오지 않았다. 특조위 청문회에서 새로 나온 진술과 기존 기록의 충돌이 적지 않은데도 수사 진행 상황은 제한적으로만 알려졌다. 수사팀은 특조위 요구 사항을 반영해 수사하고 있다는 원론적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유가족과 법조계 안팎에서는 새로 드러난 정황을 기존의 업무상 과실 법리만으로 다루기 어렵다는 지적이 이어진다.

참사 뒤 조사와 수사가 반복될수록 결과를 둘러싼 불만이 커지는 이유도 여기서 갈린다. 수사기관은 형사처벌이 가능한 개별 행위를 좁혀 본다. 유가족과 시민사회는 국가 시스템 전체가 왜 멈췄는지를 묻는다. 행정안전부, 지자체, 경찰, 소방으로 나뉜 대응 구조에서는 각 기관이 서로의 늑장과 누락을 지적하며 책임이 흩어지기 쉽다. 기록이 늦게 나오거나 일부가 빠진 상태에서 수사가 시작되면, 최종 결론이 나와도 사회가 체감하는 책임과 법정의 책임은 쉽게 겹치지 않는다.

3월 청문회가 남긴 것은 새로운 비극의 발견이 아니었다. 이미 알려졌다고 여겨졌던 시간표가 실제 기록과 얼마나 달랐는지, 그 틈에서 누가 보고를 미뤘고 누가 책임선 밖에 서 있었는지를 다시 드러낸 자리였다. 소방 입력 뒤 43분, 기동대 요청 진술과 기존 수사 결론의 충돌, 중대본 가동 시점을 둘러싼 엇갈린 설명은 참사가 아직 끝난 사건이 아니라는 점을 보여준다. 2026년 봄 다시 열린 청문회는 국가가 내놓은 기록을 다시 읽게 했다. 빠진 시간과 비어 있는 보고선, 남겨진 책임이 어디에서 시작됐는지를 다시 묻는 작업도 그 자리에서 함께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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