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일차 청문회가 겨눈 서울시 초동 조치와 용산구 대응, 엇갈린 기록과 늦어진 판단
[KtN 박준식기자]13일 열린 10·29 이태원참사 특별조사위원회 청문회 2일차의 초점은 참사 뒤 국가와 지자체가 어떻게 움직였는지에 맞춰졌다. 첫날이 참사 이전의 위험 신호와 초기 대응 실패를 따졌다면, 둘째 날은 서울시 재난안전상황실의 초동 조치, 용산구 재난안전대책본부 설치 시점과 역할, 용산구청의 보도자료 작성과 상황실 운영, 피해자 지원 체계까지 한 단계 더 안쪽으로 들어갔다. 특조위가 다시 세운 질문은 단순했다. 현장에서 이미 대형 인명 피해가 벌어진 뒤 서울시와 용산구는 왜 제때 대응 체계를 전환하지 못했느냐는 것이다.
2일차 청문회에서 먼저 도마에 오른 곳은 서울시 재난안전상황실이었다. 특조위는 서울시 상황실이 법령과 매뉴얼에 따른 초동 조치를 왜 이행하지 못했는지 확인하겠다고 밝혔다. 청문회는 상황 인지 뒤 시장 보고와 상황판단회의, 관계기관 전파와 현장 지원 체계가 실제로 어떻게 작동했는지를 따졌다. 서울시 대응을 둘러싼 논란은 참사 직후부터 이어져 왔다. 이번 청문회는 당시 제기됐던 초동 대응 지연 문제를 공개적으로 다시 검증한 자리였다.
용산구 대응도 핵심 쟁점이었다. 특조위는 2일차 세션에서 2022년 10월 29일 당시 용산구 재난안전대책본부 설치 시점, 본부장과 대책본부의 역할, 용산구청 보도자료와 재난안전상황실 운영을 들여다봤다. 참사 직후 용산구가 어떤 판단을 했고 언제 대응 체계를 끌어올렸는지, 그 과정에서 작성된 대외 설명 자료가 사실관계와 얼마나 맞았는지가 청문회 중심에 섰다는 뜻이다.
박희영 용산구청장을 둘러싼 진술도 2일차의 큰 장면 가운데 하나였다. 청문회에서는 참사 다음 날 용산구청과 대통령경호처 사이의 연락 경위가 다시 도마에 올랐다. 참사 수습과 대응 체계 전환이 급한 시점에 어떤 연락과 보고가 오갔는지, 그 우선순위가 적절했는지가 쟁점으로 떠올랐다. 청문회는 참사 전후 용산구청의 판단과 움직임을 다시 시간순으로 맞춰 보는 데 적지 않은 시간을 썼다.
2일차 청문회가 드러낸 것은 특정 기관 하나의 실수만은 아니었다. 서울시 상황실, 용산구청, 경찰, 소방이 각각 자기 기록과 절차를 앞세우는 동안 현장 대응과 중앙·지방의 연결은 매끄럽게 이어지지 못했다는 점이 다시 확인됐다. 각 기관은 자신들이 받은 보고와 당시 판단을 설명했지만, 청문회에서는 그 설명들이 서로 맞물리지 않는 장면도 적지 않았다. “우리는 보고를 기다렸다”거나 “우리 권한이 아니었다”는 취지의 답변은 기관 간 책임이 흩어지는 구조를 다시 드러냈다.
그래서 2일차 청문회는 매뉴얼의 존재 자체보다 매뉴얼이 실제로 시민을 살리는 방향으로 작동했는지를 묻는 자리로 읽힌다. 서울시는 초동 조치, 용산구는 대책본부 설치와 상황실 운영, 경찰은 지휘와 인력 운용, 소방은 다수사상자 대응의 적정성을 각각 설명했지만, 유가족과 특조위는 그 설명들이 한데 모이면 오히려 구조적 실패의 윤곽이 더 선명해진다고 보고 있다. 문서와 절차는 있었지만, 현장에서는 그 문서와 절차가 기관 사이를 잇는 공통 언어로 작동하지 못했다는 지적이다.
수사로 넘어가면 문제는 더 분명해진다. 2025년 7월 출범한 검경 합동수사팀은 특조위의 강제수사권 한계를 보완하기 위해 꾸려졌다. 참사의 원인과 구조 활동, 대응 상황의 적정성 등 전반을 다시 들여다보겠다는 취지였다. 그런데 2026년 3월 청문회 뒤에도 중간 수사 결과는 뚜렷하게 공개되지 않았다. 유가족 측이 청문회에서 새로 제기된 의혹을 철저히 수사하라고 촉구한 배경도 여기에 있다. 청문회에서 다시 부각된 쟁점과 기존 수사 결론 사이의 간극을 메우는 설명은 아직 충분하지 않다.
참사 뒤 조사와 수사가 반복될수록 결과를 둘러싼 불만이 커지는 이유도 여기서 갈린다. 수사기관은 형사처벌이 가능한 개별 행위를 좁혀 본다. 유가족과 시민사회는 국가 시스템 전체가 왜 멈췄는지를 묻는다. 행정안전부, 지자체, 경찰, 소방으로 나뉜 대응 구조에서는 각 기관이 서로의 늑장과 누락을 지적하며 책임이 흩어지기 쉽다. 기록이 늦게 나오거나 일부가 빠진 상태에서 수사가 시작되면, 최종 결론이 나와도 사회가 체감하는 책임과 법정의 책임은 쉽게 겹치지 않는다.
3월 13일 청문회가 다시 꺼낸 것은 새로운 비극이 아니었다. 참사 뒤 서울시와 용산구, 경찰과 소방이 어떤 순서로 움직였고, 어느 대목에서 판단이 늦어졌는지를 다시 시간표 위에 올려놓은 자리였다. 서울시 상황실의 초동 조치, 용산구 대책본부 설치 시점, 참사 직후 작성된 설명 자료와 실제 대응의 간극은 이 참사가 아직 끝난 사건이 아니라는 점을 보여준다. 2일차 청문회는 현장의 혼란이 중앙과 지방의 기록 속에서 어떻게 분절됐는지, 그 틈에서 누가 무엇을 놓쳤는지를 다시 묻는 자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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