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9년 볼드윈의 목소리에서 출발한 키스 헤런
데님·타탄·체커보드·장식 스포츠웨어에 겹친 미국의 반세기
[KtN 박인경기자]뉴욕 맨해튼 플랫아이언 디스트릭트에서 공개된 Advisry의 2027 봄·여름 컬렉션 제목은 ‘AMERICA, STILL’이다. 26세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이자 디자이너 키스 헤런(Keith Herron)은 제임스 볼드윈(James Baldwin)의 1969년 목소리와 1970년대 미국을 가져와 현재의 옷으로 다시 풀었다. 컬렉션에는 ‘reaction(반응)’, ‘dignity(존엄)’, ‘transformation(변화)’이라는 세 개의 흐름이 설정됐다.
헤런이 바라본 미국은 한 방향으로 정리되지 않는다. 현재 미국을 둘러싼 부정적 정서가 강한 한편, 미국이 만들어 내는 음악과 영화, 스포츠, 패션을 비롯한 문화적 영향력은 여전히 세계 곳곳에서 소비된다. 사회를 뒤흔드는 압력과 문화적 성취가 한 시대 안에 공존해 왔다는 인식이 ‘AMERICA, STILL’의 출발점에 놓였다.
검은색 드레스는 몸을 따라 길게 떨어지고, 허벅지까지 깊게 열린 슬릿이 실루엣을 가른다. 이후에는 데님과 트렌치코트, 니트, 스포츠 쇼츠, 수트, 타탄, 체커보드, 광택 소재와 장식적인 드레스가 이어진다. 미국 패션을 하나의 대표적인 옷으로 압축하기보다 서로 다른 시대와 용도의 복식을 한 컬렉션 안에 함께 놓았다.
1970년대는 헤런이 현재의 미국을 되돌아보기 위해 선택한 주요 시간대다. 정치와 사회의 갈등이 이어지는 동안 영화와 음악, 스포츠를 비롯한 대중문화도 빠르게 변했다. ‘AMERICA, STILL’은 당시의 옷을 그대로 복원하는 방식보다 시대를 기억하게 하는 인물과 문화적 요소를 현재의 실루엣과 소재에 결합했다.
영화 ‘택시 드라이버(Taxi Driver)’의 트래비스 비클(Travis Bickle)은 디스트레스드 데님 미니드레스와 드롭 숄더 트렌치코트, 버클 가죽 재킷으로 연결됐다. 영화 속 의상을 그대로 옮기는 대신 마모된 데님의 표면, 낮게 떨어지는 어깨선, 가죽과 금속 부속을 이용해 불안과 긴장이 남은 옷을 만들었다.
긴 카멜 톤 트렌치코트 안에는 데님 재킷과 데님 하의가 겹쳐졌다. 무릎 아래까지 내려오는 코트와 짧게 끊긴 데님의 길이 차이가 크고, 넉넉한 외투 사이로 겹쳐 입은 데님이 드러난다. 전통적인 트렌치코트의 단정한 비례보다 길이와 레이어링의 차이를 크게 벌린 스타일링이다.
무하마드 알리(Muhammad Ali)와 맬컴 X(Malcolm X)는 또 다른 1970년대의 좌표로 들어왔다. 크로커다일 레더 케이프릿(crocodile-leather capelet), 박스형 타탄 베스트, 체커보드 수트가 등장하면서 데님과 가죽에서 출발했던 소재 구성도 달라졌다. 어깨와 몸통의 형태가 커지고 체크와 격자무늬가 옷 전체를 차지했다.
붉은색과 검은색 체커보드는 재킷과 팬츠 전체에 반복된다. 셔츠와 타이를 갖춘 수트 형식은 그대로 두면서 강한 격자무늬를 전면에 배치했다. ‘dignity’라는 단어는 별도의 구호보다 수트의 어깨와 재킷 길이, 팬츠의 비례, 반복되는 패턴을 통해 의복으로 구체화된다.
타탄은 구조적인 드레스와 박스형 베스트, 캐주얼한 상의까지 여러 형태로 이어졌다. 같은 체크가 남성복과 여성복, 수트와 일상복을 오가면서 용도가 달라진다. 케이프와 수트도 함께 등장해 한 시대를 특정 복식이나 하위문화의 이미지로 고정하지 않는 구성을 만들었다.
시퀸을 입힌 농구 쇼츠와 진주 장식 재킷, 메탈릭 니트 스웨터가 이어지면서 소재의 표면도 크게 바뀐다. 미국 스포츠웨어에서 익숙한 농구 쇼츠에 반짝이는 장식을 더하고 니트와 재킷에도 광택과 장식을 확장했다. 기능성과 활동성을 전제로 만들어진 옷과 격식을 갖춘 장식복의 소재가 같은 컬렉션 안에서 맞닿는다.
스포츠 쇼츠와 수트, 니트와 드레스, 케이프가 성별이나 용도에 따라 엄격하게 분리되지 않는 점도 눈에 띈다. 남성복에서 익숙한 넉넉한 팬츠와 테일러링이 장식적인 소재와 결합하고, 여성복에서는 드레이프와 구조적인 실루엣이 번갈아 등장한다. ‘transformation’은 특정한 한 벌보다 서로 다른 복식의 경계를 계속 바꾸는 방식으로 이어진다.
검은색 드레스는 상체에 주름을 밀도 있게 잡고 아래로 내려갈수록 폭을 넓혔다. 검은 외부 소재 사이에서는 밝은 안쪽 부분이 드러나며 색의 대비가 생긴다. 앞서 등장한 몸에 밀착된 검은 드레스와 같은 색을 사용하면서 길이와 볼륨, 주름의 밀도는 전혀 다르게 처리했다.
‘AMERICA, STILL’에는 헤런 가족의 시간도 들어갔다. 객석에는 약 50년 전 어린 시절 아버지의 사진이 인쇄된 부채가 놓였다. 제임스 볼드윈과 ‘택시 드라이버’, 무하마드 알리와 맬컴 X를 통해 불러온 미국의 역사적 기억이 한 가족의 기록과 맞닿은 부분이다.
약 반세기의 시간은 런웨이 곳곳에서 서로 다른 형태로 겹쳤다. 1969년 볼드윈의 목소리에서 출발해 1970년대 영화와 스포츠, 정치·문화의 기억을 거쳤고, 아버지의 어린 시절 사진은 같은 시대를 개인의 시간으로 연결했다. 과거를 그대로 재현하기보다 현재 입을 수 있는 데님과 트렌치코트, 수트, 니트, 스포츠웨어로 다시 조합한 방식도 같은 흐름에 놓인다.
쇼에는 퍼블릭 스쿨(Public School)의 맥스웰 오스본(Maxwell Osborne)과 키드슈퍼(KidSuper)의 콜름 딜레인(Colm Dillane)이 참석했다. ‘AMERICA, STILL’은 디스트레스드 데님과 트렌치코트에서 체커보드 수트와 타탄, 시퀸 농구 쇼츠와 진주 장식 재킷까지 폭을 넓혔다. 1969년의 목소리와 1970년대의 문화, 약 50년 전 가족사진이 현재의 옷 안에서 한꺼번에 만난 것이 Advisry SS27의 출발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