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시토모 나라 ‘The Crated Room in Iceland / Drawing Room’ 중심에 둔 ‘PSYCHO’…97점 드로잉·가구·개인 사물로 확장된 공간형 설치

[KtN 임민정기자]전시장 한가운데 나무 상자를 닮은 구조물이 놓였다. 벽에 걸린 한 점의 회화를 일정한 거리에서 바라보는 방식과 다르다. 관람객은 구조물 가까이 다가가 안쪽을 들여다보고 주변을 이동한다. 내부에서는 벽면을 가득 채운 드로잉과 의자, 사물이 이어진다. 작품을 마주하는 위치가 정면 한 곳으로 고정되지 않는다.

홍콩 소더비 메종(Sotheby’s Maison)의 ‘PSYCHO: Identity Alienation Shadow Duality’에서 요시토모 나라(Yoshitomo Nara)의 ‘The Crated Room in Iceland / Drawing Room’은 이런 공간 경험의 중심에 있다. 15년 넘게 공개되지 않았다가 다시 모습을 드러낸 설치작업으로, 이번에 처음 경매에 나온다. 추정가는 4,500만~6,500만 홍콩달러다.

나라가 graf와 협업하던 시기에 제작한 작업에는 97점의 드로잉과 의자, CD 플레이어, 개인적인 물건, 대형 회화가 함께 들어간다. 어느 한 요소만 떼어 작품 전체를 설명하기 어렵다. 드로잉과 가구, 음악을 재생하는 기기와 생활의 흔적을 떠올리게 하는 사물이 하나의 구조 안에 모이며 ‘방’ 자체가 감상의 대상이 된다.

[전시트렌드④] 작품 한 점에서 ‘방’으로…관람객을 안으로 끌어들이는 전시.  사진=Yoshitomo Nara and Mark Rothko / Sotheby’s Hong Kong,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전시트렌드④] 작품 한 점에서 ‘방’으로…관람객을 안으로 끌어들이는 전시. 사진=Yoshitomo Nara and Mark Rothko / Sotheby’s Hong Kong,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외부에서 마주하는 구조는 운송용 나무 상자를 연상시킨다. 전시장 안에 또 다른 공간을 만들고, 관람객이 그 경계를 의식하도록 한다. 밖에서는 내부가 한눈에 보이지 않는다. 가까이 다가가고 몸의 위치를 바꿔야 안쪽의 이미지와 사물을 확인할 수 있다.

전시를 보는 행위에도 변화가 생긴다. 회화 한 점 앞에서는 관람자의 위치가 비교적 명확하지만 공간형 설치에서는 관람객이 어디에 서 있는지가 작품 경험의 일부가 된다. 멀리서 구조 전체를 볼 때와 입구 가까이에서 내부를 살필 때, 드로잉이 놓인 벽면을 정면으로 마주할 때의 인상이 각각 달라진다.

‘The Crated Room in Iceland / Drawing Room’은 작품과 전시 공간 사이의 경계를 한 번 더 나눈다. 소더비 메종이라는 큰 전시장 안에 나무 구조물이 들어오고, 그 안에 다시 나라의 이미지와 사물이 배치된다. 하나의 전시 안에서 외부와 내부, 공개된 공간과 사적인 공간의 차이가 생긴다.

‘PSYCHO’가 정체성과 소외, 그림자, 이중성을 다룬다는 점을 생각하면 이런 구성은 작품의 형태와도 맞물린다. 한 사람의 내면을 얼굴 하나로 보여주기보다 여러 이미지와 사물, 생활공간을 통해 펼쳐놓는다. 밖에서 바라보는 공간과 안쪽에 쌓인 흔적 사이의 거리도 전시의 주제와 연결된다.

나라의 대표적인 인물 이미지는 한눈에 알아보기 쉽지만 설치 안에서는 하나의 얼굴보다 많은 드로잉이 함께 존재한다. 반복되는 이미지와 작은 차이가 축적되면서 한 점의 대표작에 시선이 집중되는 방식과 다른 리듬을 만든다.

[전시트렌드④] 작품 한 점에서 ‘방’으로…관람객을 안으로 끌어들이는 전시.  사진=Yoshitomo Nara and Mark Rothko / Sotheby’s Hong Kong,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전시트렌드④] 작품 한 점에서 ‘방’으로…관람객을 안으로 끌어들이는 전시. 사진=Yoshitomo Nara and Mark Rothko / Sotheby’s Hong Kong,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내부 벽면에는 수많은 드로잉이 촘촘하게 이어진다. 각각의 그림을 독립적으로 감상할 수도 있지만 일정한 거리를 두고 보면 이미지들이 하나의 큰 집합을 이룬다. 작은 드로잉 하나하나가 서로 다른 감정과 표정을 남기면서도 공간 전체에서는 한 작가의 기억과 사고가 축적된 흔적처럼 이어진다.

의자와 CD 플레이어, 개인적인 물건이 함께 들어간다는 점도 중요하다. 회화와 드로잉만으로 구성된 전시에서는 작품과 생활 공간이 비교적 분명하게 나뉘지만 이 설치에서는 두 영역이 가까워진다. 작업을 만드는 장소와 사람이 머무는 장소, 이미지를 보는 공간이 한 구조 안에서 겹친다.

관람 경험은 자연스럽게 ‘작품을 보는 것’에서 ‘공간을 읽는 것’으로 이동한다. 벽에 걸린 드로잉뿐 아니라 사물이 놓인 위치와 구조물의 크기, 안과 밖을 나누는 벽까지 함께 인식하게 된다. 개별 작품의 의미만 따라가기보다 서로 다른 요소들이 어떤 관계를 만드는지를 살피게 된다.

최근 전시에서 ‘몰입’이라는 말은 대형 영상이나 프로젝션, 디지털 기술과 함께 사용되는 경우가 많다. 나라의 설치는 다른 방향을 보여준다. 거대한 스크린이나 움직이는 영상 없이도 물리적인 방과 작은 드로잉, 가구와 사물의 밀도만으로 관람객을 하나의 환경 안에 머물게 한다.

몰입을 기술의 규모가 아니라 공간과 작품의 관계로 만드는 방식이다. 시각적 자극을 크게 늘리기보다 관람객이 어디에서 무엇을 바라보는지를 바꾼다. 작품의 크기보다 동선과 거리, 내부와 외부의 차이가 경험을 만든다.

한 점의 대표작이 전시 전체를 지배하던 방식에서도 벗어난다. 97점의 드로잉 가운데 하나만을 골라 설치 전체를 대신하기 어렵고, 의자나 CD 플레이어 역시 독립된 대표작처럼 작동하지 않는다. 여러 요소가 동시에 있어야 공간의 성격이 완성된다.

이런 구성에서는 작품의 경계도 달라진다. 어디까지가 작품이고 어디부터가 전시 연출인지 한눈에 나누기 어려워진다. 나무 구조물과 내부 벽면, 그림과 사물이 하나의 설치를 이루면서 작품을 둘러싼 공간도 감상에서 제외할 수 없는 부분이 된다.

‘PSYCHO’는 이 공간을 다른 작품들과 다시 연결한다. 마크 로스코(Mark Rothko)의 거대한 색면은 한 자리에서 오래 바라보게 만들고, 테츠야 이시다(Tetsuya Ishida)는 한 장면 안에 갇힌 신체를 보여준다. 나라의 설치는 관람객이 직접 위치를 옮기며 여러 단서를 연결하게 한다. 한 전시 안에서도 작품마다 관람자의 몸을 다루는 방식이 달라진다.

전시의 공간화는 관람객의 역할도 바꾼다. 완성된 이미지를 바라보는 위치에서 작품의 안과 밖을 이동하며 의미를 구성하는 위치로 옮겨간다. 나라의 설치에서는 어느 한 지점이 유일한 정면이 되지 않는다. 관람객이 움직일수록 보이는 이미지와 사물의 관계가 달라진다.

소더비가 이 작품을 ‘PSYCHO’의 주요 축으로 배치한 점은 경매 공간의 변화와도 이어진다. 설치작업은 도록의 한 장이나 경매 화면만으로 경험하기 어렵다. 실제 크기와 내부 구성, 작품 사이의 거리를 전시장에 재현해야 작업의 성격이 충분히 드러난다. 경매에 앞선 전시가 단순한 출품작 확인을 넘어 작품을 체험하는 공간으로 확장될 수 있는 이유다.

‘The Crated Room in Iceland / Drawing Room’은 15년 넘게 공개되지 않았던 작품이라는 시간성까지 갖는다. 오래 공개되지 않았던 작업이 다시 조립되고, 관람객이 실제 공간을 경험한 뒤 경매에 들어간다. 작품의 재등장이 단순한 공개에 머물지 않고 전시 경험과 시장의 시간으로 연속된다.

‘PSYCHO’에서 나라의 방은 작품 한 점보다 더 많은 것을 요구한다. 가까이 다가가고, 구조물을 돌고, 안쪽을 들여다보고, 수십 점의 이미지를 차례로 살펴야 한다. 관람객의 움직임이 작품을 이해하는 순서가 된다.

전시 공간도 더 이상 작품을 걸어두는 배경에만 머물지 않는다. 구조와 동선, 사물의 배치가 작품과 결합하면서 공간 자체가 의미를 만드는 요소로 들어온다. ‘The Crated Room in Iceland / Drawing Room’이 보여주는 변화는 명확하다. 한 점을 바라보던 전시에서 하나의 환경을 통과하는 전시로, 감상의 단위가 작품에서 공간 전체로 넓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