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정질서 유린 이후에도 침묵하거나 응원하는 정치인의 언어는 무엇을 지우고 있는가
[KtN 최기형기자]대한민국 정치권에 ‘잡룡’이라는 단어가 다시 떠오르고 있다. 차기를 노리는 잠재적 대권 주자들에게 붙여지는 이 수식어는, 본래 정치적 잠재력과 비전을 의미했지만, 이제는 냉소적 조롱의 의미로 변질되고 있다. 최근 홍준표 대구시장과 김문수 고용노동부 장관의 발언은 그 전형이다.
두 사람은 스스로 보수 진영의 잠룡이라 자처해왔으나, 지난 해 12월 3일 벌어진 계엄 시도와 헌정 위기를 목격한 뒤에도 침묵하거나, 오히려 내란 기도에 연루된 인사의 복귀를 바라는 발언을 내놓았다. “탄핵 기각 후 윤석열의 통치 역량을 기대한다”(홍준표), “직무 복귀를 간절히 기도한다”(김문수)는 언급은, 사실상 헌정 질서를 훼손한 권력에 대한 공개적 지지 선언이다.
잡룡은커녕, ‘도롱뇽 리더십’의 실체
정치적 수사와 비유가 난무하는 가운데, “도롱뇽도 되지 못한다”는 평가는 단순한 풍자가 아니다. 도롱뇽은 위협이 닥치면 꼬리를 자르고 숨어버리는 생존 전략의 상징이다. 위기의 순간, 책임을 회피하고 모호한 언사로 일관하는 정치인을 향한 은유다.
공공의 리더십은 위기에서 드러난다. 그러나 홍준표 시장과 김문수 장관은 내란 시도 직후의 국가적 충격 앞에서도 헌정 회복의 의지를 드러내기보다, 권력 중심부에 다시 힘이 실릴 가능성에만 주목했다. 이는 단순한 정치적 선택을 넘어, 헌정 윤리에 대한 감수성 결여로 해석될 수 있다.
특히 김문수 장관은 현직 고용노동부 장관 신분임에도 정치적 발언의 수위를 높이고 있어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성 원칙에도 위배된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리더십의 공백, 민주주의의 감각은 어디로 갔는가
정치 지도자에게 요구되는 가장 기본적 감수성은 ‘헌정 질서 수호’다. 내란이라는 비정상적 권력 탈취 시도를 앞에 두고, 그것이 무력화되기를 바라는 언사는 사실상 헌정 파괴의 정당화와 다름없다.
지금 한국 정치는 단지 인물의 문제를 넘어 구조적 리더십 결핍의 국면에 접어들고 있다. 권력을 향한 욕망이 공공 윤리 위에 서고, 통치 가능성의 검증은 사라진 채 정략적 충성도가 평가 기준이 되어버린 것이다.
특히 대권 잠룡을 자처하는 인물들이 헌정 위기 앞에 입을 다물거나 동조할 경우, 그것은 단지 리더십의 상실이 아니라 민주주의 자체에 대한 방기다.
헌정 수호는 침묵이 아닌 책임 있는 언어에서 시작된다
‘잡룡 정치’는 더 이상 통치 비전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권력에 민감하게 반응하면서도 책임 있는 발언과 행동을 회피하는 정치의 새로운 비유가 되었다.
국민은 누가 헌법을 위해 싸웠고, 누가 내란을 외면했는지 정확히 기억한다. 말과 행동이 일치하지 않는 리더는 대중의 신뢰를 얻지 못한다. 단호한 태도 없이 광화문 네거리 대신 SNS 속 은폐된 발언만 반복하는 정치인에게는, 더 이상 공공 리더십의 자격이 없다.
지금 필요한 것은 강한 언사가 아니다. 민주주의의 위기를 외면하지 않는 명확한 태도, 책임지는 발언, 그리고 권력보다 헌정을 우선시하는 윤리다. 그것이 공공 리더십의 기본이고, 잡룡이 아닌 지도자가 갖춰야 할 조건이다.
후원=NH농협 302-1678-6497-21 위대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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