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유화에서 산의 윤곽을 거대한 기하학적 구조로 압축…고대의 기호와 현대적 추상회화가 결합한 키르기스 예술의 새로운 표현
[KtN 박준식기자]키르기스스탄 화가 유리 스탄벡 쉬가예프의 2000년작 ‘술레이만 산(Suleiman Mountain)’에는 캔버스 중앙을 가득 채운 거대한 삼각형이 솟아 있다. 검은 갈색의 거친 표면을 가진 삼각형은 붉은 윤곽선으로 둘러싸여 있으며, 아래쪽에는 보라색 바탕과 기하학적 기호들이 펼쳐져 있다. 연한 노란색의 공간에는 작은 사각형과 삼각형, 원형 기호들이 흩어져 있다. 자연의 산을 기하학적 형태로 압축하고 그 주변에 상징적인 기호를 배치한 구성이다.
‘술레이만 산’은 쉬가예프가 자연의 풍경을 신화적·상징적 조형언어로 발전시킨 흐름을 잘 드러낸다. 초기 판화에서 산과 집, 말과 사람의 구체적인 모습을 표현했던 작가는 1980년대 후반부터 자연의 형상을 단순화하고 다양한 기호와 결합하는 회화를 제작했다. 2000년의 ‘술레이만 산’에서는 산의 윤곽이 하나의 거대한 삼각형으로 정리되고, 그 주변에는 문자와 문양을 연상시키는 기호들이 배치됐다. 풍경의 지형과 상징적 구조가 하나의 회화 안에서 결합한 것이다.
삼각형은 작품의 중심을 이루는 가장 큰 형상이다. 아래쪽의 넓은 밑변에서 시작한 두 변은 위로 올라가며 하나의 꼭짓점에서 만난다. 삼각형의 내부에는 짙은 갈색과 검은색, 회색이 겹쳐 있고 표면에는 거친 붓질과 긁힌 흔적이 남아 있다. 붉은색의 가는 윤곽선은 삼각형의 외곽을 따라 이어지며 주변의 밝은 노란색과 강한 대비를 만든다.
삼각형의 내부는 균일한 색면으로 처리되지 않았다. 짙은 갈색의 바탕 위에 검은색과 회색의 흔적이 겹쳐 있고, 일부에는 붉은색과 녹색의 작은 영역이 나타난다. 표면의 질감은 거친 암석이나 흙의 층을 떠올리게 한다. 쉬가예프는 삼각형이라는 단순한 기하학적 형태 안에 복잡한 물감의 흔적을 남겨 자연의 물질적인 성격을 표현했다.
삼각형의 왼쪽 위에는 붉은색의 작은 사각형이 자리한다. 짙은 갈색의 표면에서 붉은색은 비교적 선명하게 드러나며, 거친 붓질과 색채의 겹침이 남아 있다. 오른쪽 아래에는 녹색의 직사각형이 놓여 있다. 두 색면은 서로 다른 높이와 위치에 배치돼 삼각형 내부에 시각적인 균형을 만든다. 붉은색과 녹색의 대비는 짙은 갈색의 넓은 면에 작은 색채의 변화를 더한다.
삼각형의 외곽을 따라 이어지는 붉은 윤곽선도 중요한 요소다. 밝은 노란색의 바탕과 짙은 갈색의 삼각형 사이에서 붉은색은 두 영역을 분명하게 구분한다. 왼쪽의 붉은 선은 밑변에서 꼭짓점까지 곧게 올라가고, 오른쪽의 붉은 선은 아래로 길게 내려온다. 두 선이 만드는 날카로운 꼭짓점은 산의 높이와 수직적인 움직임을 강조한다.
삼각형의 아래쪽에는 보라색의 넓은 띠가 놓여 있다. 짙은 보라색은 검은 갈색의 삼각형과 맞닿으며 작품의 하단을 이룬다. 보라색의 바탕에는 붉은색과 푸른색의 작은 흔적이 남아 있고, 그 위에는 여러 기하학적 형상이 가로로 배열돼 있다. 삼각형의 단순한 구조와 달리 하단에는 작은 기호들이 밀집하면서 복잡한 구성이 나타난다.
하단의 기호들은 직사각형과 원형, 삼각형, 물고기나 눈을 연상시키는 형상들로 이루어져 있다. 왼쪽에는 푸른색과 검은색이 겹친 둥근 형태가 놓여 있고, 중앙에는 붉은 삼각형과 작은 원들이 이어진다. 오른쪽에는 흰색의 물고기 모양과 녹색의 둥근 기호가 자리한다. 서로 다른 기호들이 가로로 이어지면서 하나의 긴 띠를 형성한다.
하단의 긴 띠는 여러 개의 작은 구획으로 나뉜다. 검은색과 붉은색, 녹색과 흰색이 반복되며 각 구획 안에는 작은 기호가 들어 있다. 일부는 눈이나 물고기, 동물의 얼굴을 연상시키고 다른 부분은 단순한 기하학적 문양으로 나타난다. 기호들의 형태와 색채가 일정한 순서 없이 이어지면서도 전체적으로 수평적인 구조를 유지한다.
보라색 바탕의 아래쪽에는 또 하나의 긴 기호 띠가 놓여 있다. 왼쪽에는 검은색과 붉은색의 작은 사각형이 이어지고, 중앙에는 푸른색의 물고기나 눈을 연상시키는 형상이 나타난다. 오른쪽에는 회색과 갈색의 둥근 형태가 자리하며 그 안에 검은색의 타원형 기호가 들어 있다. 여러 형상이 서로 다른 크기와 방향으로 배치되면서 하단의 보라색 공간을 채운다.
이러한 기호들은 쉬가예프가 후기 회화에서 발전시킨 상징적 조형언어와 연결된다. 작가는 중앙아시아의 전통적인 문양과 신화적 형상, 동물과 인간의 모습을 단순화한 기호들을 회화에 반복적으로 사용했다. ‘술레이만 산’에서는 산의 형상이 거대한 삼각형으로 정리되고 그 아래에는 여러 기호들이 띠처럼 배열됐다. 자연의 지형과 기호의 세계가 위아래로 나뉘면서 하나의 구조를 이룬다.
작품 상단의 노란색 공간에도 작은 기호들이 흩어져 있다. 왼쪽 위에는 푸른색의 사각형이 놓여 있고 내부에는 흰색의 복잡한 선들이 겹쳐 있다. 원형과 직선, 짧은 곡선들이 이어진 구성은 고대의 문자나 지도, 천문학적 기호를 떠올리게 한다. 푸른색의 바탕과 흰색의 선이 대비되면서 노란색의 넓은 공간에서 뚜렷하게 드러난다.
오른쪽 위에는 붉은색의 작은 직사각형이 자리한다. 내부에는 흰색의 곡선과 직선이 결합한 기호가 들어 있다. 그 아래에는 붉은색과 흰색의 작은 사각형이 놓여 있고, 오른쪽에는 더 작은 붉은색의 기호들이 흩어져 있다. 각각의 기호는 서로 다른 형태를 지니면서도 붉은색과 흰색의 대비를 공유한다.
왼쪽 중간에는 작은 삼각형이 놓여 있다. 푸른색과 회색의 바탕 안에 흰색의 곡선이 들어 있고, 삼각형의 끝은 아래쪽을 향한다. 오른쪽 중간에도 비슷한 크기의 삼각형이 자리한다. 검은색과 푸른색의 바탕 안에는 흰색의 눈을 연상시키는 기호가 들어 있다. 두 삼각형은 중앙의 거대한 삼각형과 형태를 공유하면서도 크기와 방향에서 차이를 보인다.
중앙의 거대한 삼각형과 주변의 작은 삼각형들은 작품 전체에 반복적인 기하학적 구조를 만든다. 큰 삼각형은 위쪽을 향해 솟아 있고, 주변의 작은 삼각형들은 아래쪽이나 옆쪽을 향한다. 같은 형태가 서로 다른 크기와 방향으로 반복되면서 작품의 공간에 리듬이 생긴다.
노란색의 바탕은 작품 전체에서 가장 넓은 밝은 색채다. 삼각형을 둘러싼 노란색은 비교적 균일하게 펼쳐져 있지만 미세한 붓질과 색채의 흔적이 남아 있다. 밝은 바탕은 짙은 갈색의 삼각형을 강조하고 주변의 작은 기호들이 독립적으로 드러나도록 한다. 붉은색과 푸른색, 흰색의 작은 기호들은 노란색의 넓은 공간에서 서로 다른 위치를 차지한다.
쉬가예프는 색채를 통해 작품의 영역을 분명하게 나눴다. 중앙의 짙은 갈색 삼각형은 산의 형상을 이루고, 상단의 노란색은 그 주변의 넓은 공간을 만든다. 하단의 보라색은 기호들이 밀집한 영역으로 구성됐다. 세 가지 주요 색채가 서로 다른 조형적 역할을 맡으면서 작품 전체에 강한 질서가 형성된다.
‘술레이만 산’이라는 제목은 키르기스스탄 오시(Osh)에 위치한 술레이만투(Sulaiman-Too)를 떠올리게 한다. 술레이만투는 중앙아시아에서 오랫동안 신성한 장소로 여겨져 온 산으로, 여러 종교적·문화적 전통이 축적된 공간이다. 쉬가예프는 이러한 산의 이름을 작품에 사용하면서 자연의 지형을 하나의 상징적 구조로 압축했다.
작품 중앙의 삼각형은 실제 산의 복잡한 능선과 지형을 세밀하게 묘사한 형태보다 단순하다. 넓은 밑변과 날카로운 꼭짓점이 산의 기본적인 윤곽을 이루고, 내부의 거친 질감은 암석과 흙을 연상시킨다. 자연의 구체적인 형태가 기하학적 구조로 정리되면서 산은 작품 전체를 지배하는 상징적 형상이 된다.
삼각형 아래의 기호들은 산과 인간의 문화적 관계를 떠올리게 한다. 원형과 십자형, 물고기나 눈을 연상시키는 형상들이 띠처럼 이어져 있으며, 각 기호는 독립적인 형태를 지닌다. 쉬가예프는 자연의 산을 위쪽에 놓고 기호의 집합을 아래쪽에 배치해 자연과 인간의 기억이 함께 존재하는 공간을 구성했다.
1980년대 초 쉬가예프의 색채 판화에서 산은 생활의 배경으로 등장했다. ‘햇빛 비친 집’에서는 멀리 펼쳐진 산과 집, 말이 하나의 풍경을 이루며 자연과 인간의 생활이 구체적인 모습으로 표현됐다. 산은 하늘과 대지 사이에 놓인 지형으로, 집과 말의 존재를 둘러싼 자연환경을 구성했다.
1990년 ‘여행자들’에서도 산은 넓은 대지와 함께 등장했다. 두 개의 봉우리가 하늘 아래 솟아 있었고, 그 앞에는 붉은 인물과 검은 인물이 나란히 서 있었다. 멀리에는 기마상이 지나가고 대지의 아래쪽에는 원형과 십자형, 식물과 동물을 연상시키는 기호들이 흩어져 있었다. 자연의 풍경과 인간의 모습, 상징적 기호가 하나의 공간에 결합한 작품이었다.
2000년의 ‘술레이만 산’에서는 산이 작품의 중심으로 이동했다. 자연의 풍경을 구성하던 여러 요소들이 줄어들고 산의 윤곽이 거대한 삼각형으로 정리됐다. 인물과 말, 대지의 구체적인 모습 대신 기호와 문양들이 주변을 채운다. 쉬가예프가 자연의 지형을 관찰하던 초기 작업에서 출발해 산 자체를 상징적 형상으로 다루는 방향으로 발전했음을 보여준다.
1990년 ‘매의 위엄’에서도 쉬가예프는 자연의 생명체와 상징적인 기호를 결합했다. 높은 언덕에 앉은 매와 빛의 기둥, 거대한 원형과 문양들이 한 작품에 등장했다. 매의 구체적인 모습과 추상적인 기호가 서로 다른 위치에서 관계를 맺었다. ‘술레이만 산’에서는 산의 윤곽이 기하학적 형태로 압축되고 기호들은 상단과 하단에 나뉘어 배치된다.
‘술레이만 산’의 하단에 놓인 기호 띠는 문자나 기록을 연상시키는 구조를 지닌다. 여러 개의 작은 구획 안에 서로 다른 기호가 들어 있고, 각 구획은 가로로 이어진다. 일부 기호는 눈이나 물고기, 동물의 얼굴을 떠올리게 하고 다른 부분은 단순한 원형과 삼각형으로 구성됐다. 이러한 배열은 쉬가예프가 신화와 전통적인 문양을 현대적인 조형언어로 발전시키는 과정에서 중요한 특징이다.
상단의 작은 기호들도 서로 다른 위치에서 독립적인 형태를 유지한다. 푸른색의 사각형과 붉은색의 직사각형, 작은 삼각형들이 노란색의 넓은 공간에 흩어져 있다. 기호들은 중앙의 삼각형을 둘러싸면서 작품 전체에 상징적인 분위기를 더한다. 거대한 산의 형태와 작은 기호들의 대비는 자연의 크기와 인간이 남긴 흔적을 함께 떠올리게 한다.
쉬가예프는 ‘술레이만 산’에서 기하학적 형태와 물감의 질감을 함께 활용했다. 삼각형의 윤곽은 날카롭고 분명하지만 내부에는 거친 붓질과 긁힌 흔적이 남아 있다. 하단의 기호들은 비교적 단단한 직선과 원형으로 구성됐으며, 상단의 작은 기호들에도 짧고 가는 선들이 반복된다. 단순한 구조 안에 서로 다른 질감과 선의 움직임이 겹치면서 작품의 밀도가 높아진다.
작품의 세로형 비례는 중앙의 삼각형을 더욱 강조한다. 아래쪽의 넓은 밑변에서 시작한 두 변은 위로 길게 올라가며 하나의 꼭짓점에서 만난다. 삼각형의 높이는 캔버스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고, 주변의 노란색은 그 형태를 감싸는 넓은 여백을 만든다. 하단의 보라색 띠는 삼각형을 받치는 수평적인 구조로 작용한다.
산의 형상과 기호의 배열은 쉬가예프가 2000년 전후 발전시킨 회화의 특징을 드러낸다. 자연의 지형을 기하학적 형태로 압축하고 그 주변에 문자와 문양을 연상시키는 기호들을 배치하면서 자연과 문화의 관계를 회화적으로 구성했다. 산의 거친 표면과 작은 기호들의 단단한 윤곽이 서로 다른 질감을 유지하며 작품의 구조를 완성한다.
‘술레이만 산’은 쉬가예프가 중앙아시아의 자연과 신화적 전통을 현대적인 추상회화로 발전시킨 작품이다. 중앙의 거대한 삼각형은 산의 형상을 압축하고, 하단의 보라색 영역에는 여러 기호들이 가로로 이어져 있다. 상단의 노란색 공간에는 작은 사각형과 삼각형, 원형 기호들이 흩어져 있다. 자연의 지형과 인간의 문화적 기억이 서로 다른 조형적 구조로 배치되면서 하나의 회화를 이룬다.
2000년의 ‘술레이만 산’에서 산은 짙은 갈색의 거대한 삼각형으로 솟아 있고, 붉은 윤곽선은 그 형태를 분명하게 드러낸다. 주변의 노란색과 아래쪽의 보라색은 산의 형상을 둘러싼 공간을 구성하며, 여러 기호와 문양은 자연의 지형에 축적된 인간의 기억을 떠올리게 한다. 쉬가예프는 산의 외형을 간결한 기하학적 구조로 정리하고 상징적 기호를 결합해 중앙아시아의 자연과 문화적 전통을 회화로 재구성했다. ‘술레이만 산’은 초기의 풍경화에서 출발한 쉬가예프의 조형언어가 자연의 형상과 기호의 결합으로 발전한 흐름을 선명하게 보여주는 작품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