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랜드 생산자금은 빠르게 돌지만 소재 사업화에는 수년…대학·출연연·스타트업·ODM·투자가 연결돼야 기술이 매출로 바뀐다
특별기획 | K-뷰티의 미래는 원료 전쟁
[KtN 임우경기자] 2026년 1분기 국내 중소기업의 화장품 수출액은 21억8000만달러였다.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1.3% 늘며 분기 기준 최고치를 기록했다. 화장품은 중소기업 수출을 떠받치는 대표 품목으로 자리 잡았다. 글로벌 전자상거래와 전문 유통망을 통해 신생 브랜드가 해외 소비자에게 도달하는 속도도 빨라졌다.
정부 금융지원도 브랜드의 제품 출시와 생산에 맞춰 움직인다. 2026년 중소기업 K-뷰티론은 화장품 브랜드가 제조사에 낸 발주서나 발주 증빙을 바탕으로 신제품 생산자금을 지원한다. 기업당 연간 지원 한도는 3억원이며, 발주 건별로는 1억5000만원까지 신청할 수 있다. 제품 기획을 마치고 생산 주문을 넣은 기업이 자금 부족으로 출시 시기를 놓치지 않도록 만든 제도다.
원료기업은 같은 서류를 내기 어렵다. 새 식물 소재나 펩타이드, 발효물, 전달체를 개발하는 단계에서는 완제품 발주서가 존재하지 않는다. 실험실에서 유효한 결과를 얻은 뒤에도 원료 규격과 분석법, 독성 정보, 장기 안정성, 제조 수율, 고객사 처방, 해외 규제 문서를 마련해야 한다. 브랜드가 제품 한 종을 생산하는 기간보다 원료 하나가 공장에 반복 납품되기까지의 시간이 길다.
브랜드는 완제품을 출시해 소비자 반응을 확인한 뒤 생산량을 조정할 수 있다. 원료기업은 고객사가 생기기 전에 분석 장비와 파일럿 설비, 연구 인력, 안전성 평가에 먼저 자금을 투입해야 한다. 연구 결과가 뛰어나도 원료 구매를 약속하는 제조사와 브랜드가 없으면 상업 생산 규모를 정하기 어렵다. 생산설비를 갖추지 않으면 고객사가 주문하지 않고, 주문이 없으면 설비투자를 받기 어려운 순환이 국내 원료 스타트업 앞에 놓여 있다.
브랜드의 6개월과 원료기업의 5년
K-뷰티 브랜드는 시장 반응이 빠른 산업이다. 인기 성분과 제형을 정하고 ODM에 개발을 의뢰하면 수개월 안에 완제품을 출시할 수 있다. 온라인 광고와 체험단, 인플루언서 콘텐츠를 통해 판매 가능성도 비교적 일찍 확인한다.
원료 개발은 출발점부터 다르다. 식물 추출물이라면 종과 사용 부위, 산지, 수확 시기, 추출용매를 정해야 한다. 미생물과 발효 소재는 균주와 배양 조건, 배지, 발효 시간, 정제 공정을 고정해야 한다. 펩타이드와 합성 소재는 순도와 불순물, 구조 확인, 생산 수율을 관리해야 한다.
실험실에서 100㎖를 만들 때와 공장에서 500㎏을 생산할 때 사용하는 장비와 가열·냉각 조건도 달라진다. 교반 속도와 투입 순서가 바뀌면 입자 크기와 점도, 색, 냄새가 달라질 수 있다. 파일럿 생산에서 성공했더라도 상업 생산 탱크에서 같은 품질을 반복하지 못하면 고객사는 원료를 채택하기 어렵다.
완제품에 들어간 뒤에는 별도의 검증이 이어진다. 원료 상태에서는 안정적이었던 성분이 유화제와 보존제, 향료, 자외선 차단 성분과 만나 침전하거나 분해될 수 있다. 토너와 크림, 선크림, 클렌저마다 산도와 제조 온도, 사용 목적이 달라 같은 원료를 그대로 적용하기 어렵다.
원료기업은 한 고객을 확보하기 위해 여러 제형의 예시 처방을 만들고 제조사의 생산 공정에 맞춰 기술지원을 해야 한다. 브랜드가 원료를 바꾸면 완제품 안정성 시험과 인체적용시험, 수출국 등록을 다시 진행해야 할 수 있다. 고객의 교체 비용은 원료기업의 장기 매출을 지탱하지만 최초 채택까지는 긴 검증 기간이 필요하다.
논문에서 규격서로 넘어가는 거리
대학과 공공연구기관에서는 식물과 미생물, 발효, 펩타이드, 나노 전달체에 관한 연구가 계속 나온다. 세포 수준에서 항산화나 피부 관련 지표를 확인하고 새로운 추출법과 조성물 특허를 확보한 뒤 기업에 기술을 이전하는 구조도 갖춰져 있다.
기술이전 계약은 연구실 기술이 시장에 도착했다는 뜻이 아니다. 기업이 특허와 노하우를 넘겨받은 뒤 공정 규모를 키우고 원료 규격을 설정해야 한다. 분석법을 재현하고 원물 공급망을 확보하며 배치별 편차를 줄이는 작업도 기업 몫으로 남는다.
산업통상부가 매년 실시하는 공공기술 이전·사업화 조사는 기술이전 계약과 기술료뿐 아니라 이전 기술의 실제 활용과 사업화, 기술 기반 창업, 사업화 장애 요인을 별도로 집계한다. 기술을 넘기는 단계와 매출을 만드는 단계가 서로 다른 과정이라는 점이 국가 통계의 조사 체계에도 반영돼 있다. 2025년 조사에는 대학과 공공연구소 302곳이 대상에 포함됐고 283곳이 응답했다.
대학 연구실은 논문과 특허를 목표로 연구를 설계하는 경우가 많다. 기업은 수율과 원가, 대량생산, 규제, 납기를 먼저 확인한다. 세포실험에서 강한 활성이 나타난 물질도 추출 수율이 낮거나 원료 가격이 지나치게 높으면 화장품에 적용하기 어렵다. 색과 냄새가 강하거나 농약·중금속 관리가 어려운 소재도 상용화 과정에서 제외될 수 있다.
기술이전 조건도 차이를 만든다. 대학이 선급 기술료와 매출 연동 기술료를 요구하고 기업이 추가 독성시험과 공정 개발비를 모두 부담하면 초기 비용이 커진다. 반대로 기술료를 낮추고 독점권을 넓게 제공하면 연구기관이 기술의 장기 가치를 충분히 확보하지 못할 수 있다.
원료 기술이 시장에 도착하려면 특허와 함께 표준시료, 분석법, 원물 공급처, 파일럿 제조 기록, 실패한 조건까지 이전돼야 한다. 연구자가 기업의 공정 확대와 고객 대응에 일정 기간 참여하는 구조도 필요하다. 계약서만 체결하고 연구자와 기업이 분리되면 실험실에서 작동한 조건을 공장에서 다시 찾는 데 시간과 자금이 중복 투입된다.
국내 원료기업은 이미 수백억원 시장을 만들었다
한국 화장품 원료산업이 연구실 단계에만 머무는 것은 아니다. 천연물과 바이오 소재, 분체, 계면활성제, 펩타이드 분야에서 수백억원대 매출을 내는 기업이 자리 잡고 있다.
현대바이오랜드의 2025년 화장품 부문 매출은 537억6600만원으로 전체 매출의 41.2%를 차지했다. 2026년 1분기 화장품 부문 매출은 158억700만원, 비중은 41.3%였다. 건강기능식품과 의약품 원료, 의료기기 사업도 함께 운영하며 천연물과 바이오 소재의 적용 범위를 여러 산업으로 넓힌 구조다.
대봉엘에스는 2025년 연결 매출 1021억원으로 처음 1000억원을 넘어섰다. 전년보다 8.6% 증가한 수치다. 원료의약품과 화장품 소재를 함께 운영하며 천연 소재와 합성 소재, 펩타이드, 더마코스메틱용 원료를 공급해온 기업이다. 화장품 소재기업이 국내 브랜드의 주문을 넘어 동남아시아와 유럽 수출, 전문 유통용 소재로 매출 기반을 넓힌 흐름이 실적에 반영됐다.
선진뷰티사이언스의 2025년 연결 매출은 808억원으로 5년 연속 최고치를 기록했다. 화장품 소재 제품의 매출총이익률은 2021년 28.4%에서 2025년 37.0%로 높아졌다. 이탈리아 법인은 2025년 매출 116억원과 영업이익률 22.7%를 기록했고, 미국 법인은 뉴저지 프린스턴에서 2025년 2월 영업을 시작했다. 한국 원료기업이 해외 대리점에 제품을 넘기는 방식에서 현지 법인을 통해 고객사의 처방과 규제 요청에 직접 대응하는 구조로 이동하고 있다.
세 기업의 사업 영역은 서로 다르다. 현대바이오랜드는 천연물·바이오 소재, 대봉엘에스는 원료의약품과 화장품 소재, 선진뷰티사이언스는 자외선 차단용 분체와 기능성 소재에 기반을 둔다. 공통점은 원료 한 종의 유명세보다 제조시설과 분석 능력, 고객 처방, 해외 영업망을 함께 갖췄다는 데 있다.
국내 원료산업의 기반이 없어서 해외 원료를 수입하는 구조가 아니다. 국내 업체가 공급하는 제품군과 해외 고객망, 규제 지원 능력이 글로벌 대형 소재기업보다 좁고, 브랜드와 ODM이 요구하는 모든 기능을 한 업체에서 제공하기 어렵다는 점이 격차를 만든다.
원료기업은 원료만 팔지 않는다
세계 시장에서 원료기업은 분말과 액체를 납품하는 회사로 머물지 않는다. 고객 브랜드가 원하는 효능과 사용감을 듣고 적용 가능한 원료와 처방을 함께 제안한다. 제품 개발 중 침전과 변색, 점도 변화가 발생하면 원인을 분석하고 대체 처방을 제공한다.
국가별 규제 지원도 영업의 일부다. 유럽연합과 미국, 중국, 인도네시아, 중동에 같은 원료를 판매하려면 사용 제한과 안전성 문서, 나노물질 여부, 알레르기 정보, 할랄·비건 관련 자료를 각각 준비해야 한다. 고객사가 요구하는 서류를 즉시 제공하지 못하면 원료의 성능이 좋아도 제품 출시 일정에 맞추기 어렵다.
해외 법인은 판매량을 늘리는 수단만이 아니다. 시차와 언어, 현지 규제, 처방 관행을 고객 가까이에서 처리하는 응용 연구 거점에 가깝다. 선진뷰티사이언스가 이탈리아와 미국에 현지 법인을 둔 이유도 기술지원과 직접 영업을 함께 수행하기 위해서다. 회사는 2002년부터 글로벌 화장품 원료 전시회에 참가해왔고, 현재 연평균 10개 안팎의 해외 전시회에서 원료와 제형을 소개하고 있다.
국내 스타트업이 새로운 천연물과 전달기술을 개발해도 해외 전시회 참가와 샘플 발송만으로 장기 주문을 확보하기는 어렵다. 현지 제조사가 원료를 평가할 수 있도록 샘플 규격과 예시 처방, 안정성 정보, 분석법을 제공해야 한다. 첫 샘플을 보낸 뒤 제품 출시까지 1년 이상 걸릴 수도 있어 해외 영업 인력과 운영자금을 장기간 유지해야 한다.
브랜드 스타트업은 소비자 반응을 빠르게 확인하고 광고비를 조정할 수 있다. 원료 스타트업은 고객사의 비밀 처방 안에서 평가가 진행되기 때문에 외부에 판매 진행 상황을 공개하기 어렵다. 투자자는 고객사 이름을 듣지 못한 채 시험 단계와 예상 주문량을 판단해야 한다. 기술력이 매출로 바뀌기 전까지 기업가치를 설명하기 어려운 배경이다.
ODM과 대형 브랜드가 첫 구매자가 돼야 한다
새 원료기업이 가장 먼저 확보해야 할 자산은 투자자보다 구매 고객이다. ODM이나 대형 브랜드가 개발 단계부터 참여해 목표 가격과 사용 농도, 제형 조건을 제시하면 연구 방향이 산업 수요와 가까워진다.
국내 대학과 스타트업이 식물 추출물을 개발한 뒤 완성된 기술을 제조사에 소개하는 방식에서는 목표 원가와 색, 향, 배합 조건이 뒤늦게 드러난다. 연구 초기부터 ODM의 처방 연구원과 구매 담당자, 규제 담당자가 참여하면 상업화 가능성이 낮은 조건을 일찍 걸러낼 수 있다.
대형 수요기업은 최소 구매량이나 공동개발 계약을 통해 원료기업의 설비투자를 가능하게 한다. 일정한 성능을 달성하면 연간 구매량을 보장하거나 시험 생산 비용을 분담하는 방식이다. 원료기업은 예상 물량을 바탕으로 파일럿 설비와 원물 계약을 준비하고, 수요기업은 경쟁사가 쉽게 구할 수 없는 전용 소재를 확보한다.
공동개발에서 권리 귀속은 초기부터 정해야 한다. 원료기업이 보유한 기반 기술과 브랜드가 제공한 처방 정보, ODM이 개발한 제조 공정이 하나의 제품에서 결합될 수 있다. 특허와 상표, 해외 사용권, 다른 고객에게 공급할 수 있는 범위를 명확히 하지 않으면 제품이 성공한 뒤 분쟁이 생길 수 있다.
독점권을 지나치게 넓게 주면 원료기업의 시장 확장이 막힌다. 독점권이 너무 좁으면 개발비를 부담한 브랜드가 유사 제품의 등장을 막기 어렵다. 국가와 제품군, 농도, 유통 채널, 계약 기간을 나눠 권리를 설정해야 원료기업과 브랜드가 함께 수익을 얻을 수 있다.
투자금은 연구실보다 공장 문턱에서 많이 든다
원료 스타트업의 비용은 특허를 출원한 뒤 급격히 늘어난다. 반복 독성시험과 피부 자극 평가, 불순물 분석, 장기 안정성, 시험법 검증, 파일럿 생산, 제조시설 적격성 평가가 이어진다. 해외 출원을 선택하면 번역과 현지 대리인, 연차료도 부담해야 한다.
정부의 연구개발 지원은 초기 기술 탐색과 안전성·규제 기반을 마련하는 데 역할을 한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2026년에도 규제과학과 제품화 지원을 위한 출연 연구개발사업을 여러 차례 공고했고, 화장품 글로벌 규제조화 지원센터와 안전성 평가 제도 안내를 운영하고 있다.
초기 연구비와 완제품 생산자금 사이에는 원료의 공정 확대를 전담하는 자금 구간이 필요하다. 분석실에서 얻은 수그램의 소재를 수십 킬로그램으로 늘리고, 고객사 평가용 배치를 반복 생산하는 단계다. 매출이 발생하기 전이지만 연구 자체는 상당 부분 끝나 있어 기초연구 지원과 맞지 않고, 발주서가 없어 생산금융에도 들어가기 어렵다.
민간 투자도 같은 구간에서 판단이 갈린다. 브랜드는 판매액과 재구매율, 광고 효율을 수개월 단위로 제시할 수 있다. 원료기업은 고객사의 평가가 진행 중이라는 사실과 샘플 공급 기록, 예상 생산수율로 가능성을 설명해야 한다. 투자 회수 기간도 브랜드보다 길어질 수 있다.
원료기업 투자에서는 논문 편수와 특허 건수보다 상업화 지표가 중요하다. 원료 1㎏을 생산하는 원가와 수율, 배치별 성분 편차, 고객사 평가 통과율, 샘플에서 구매로 전환된 비율, 반복 주문 기간, 상위 고객 매출 비중, 해외 매출, 기술사용료가 실제 사업의 상태를 드러낸다.
화장품 원료는 의약품보다 시장 진입 기간이 짧을 수 있지만 유행 변화도 빠르다. 연구개발에 5년을 쓴 소재가 출시될 무렵 소비자 관심이 다른 성분으로 이동할 수 있다. 특정 성분명 하나에 기업 전체를 걸기보다 여러 제품에 적용할 수 있는 추출·발효·캡슐화·전달 플랫폼을 구축해야 연구 자산의 수명이 길어진다.
국내 특허보다 해외 고객의 반복 주문
국내 원료 스타트업은 기술을 설명할 때 국내 특허와 정부 지원 선정 이력을 먼저 제시하는 경우가 많다. 세계 시장에서 거래가 시작되면 고객은 다른 문서를 요구한다. 미국과 유럽, 중국에서 특허가 유효한지, 원료가 현지 목록에 등록됐는지, 안전성 평가에 필요한 정보가 있는지, 상업 생산 배치가 몇 차례 반복됐는지를 확인한다.
국내 특허만 보유한 기술은 해외 경쟁사가 현지에서 같은 공정이나 유사 조성을 사용하는 일을 막기 어렵다. 세계 주요 시장에 모두 출원하면 비용이 급격히 늘어난다. 원료기업은 기술을 실제로 사용할 국가와 고객사를 먼저 정하고 특허 출원 지역을 선택해야 한다.
특허를 공개하는 대신 제조 세부 조건을 영업비밀로 남길 수도 있다. 추출 온도와 정제 순서, 배양 조건, 입자 크기를 맞추는 장비 설정은 완제품 분석만으로 알아내기 어려울 수 있다. 조성물과 용도는 특허로 보호하고 공정 노하우는 내부에서 관리하는 혼합 전략이 필요하다.
기술사용료를 받는 구조도 원료 판매와 함께 설계할 수 있다. 원료를 직접 공급하면서 특정 브랜드와 국가에 독점 사용권을 주거나, 해외 제조사에 생산기술을 이전하고 매출 연동 사용료를 받을 수 있다. 원료 수출만으로는 운송비와 현지 재고 부담이 커질 때 현지 생산과 라이선스가 대안이 된다.
반복 주문이 없으면 특허의 사업 가치는 확인되지 않는다. 한 번의 샘플 판매와 연구용 공급을 상업 매출로 확대해 해석해서도 안 된다. 고객사의 정규 처방에 들어가 같은 규격으로 여러 배치를 공급하고, 완제품이 재생산될 때 주문이 이어져야 원료 기술이 기업 자산으로 자리 잡는다.
연구개발은 완제품 수를 늘리는 작업이 아니다
신영미 (주)에스와이멤코스매틱 대표는 K-뷰티의 성장을 위해 새로운 원료 연구개발을 확대해야 하며, 원료를 실제 제품에 적용할 때는 함량과 가열 과정의 반응, 다른 성분과의 결합 상태까지 확인해야 한다는 판단을 전했다. 완제품 이름을 늘리는 방식보다 독자 원료를 만들고 제형 안에서 안정적으로 구현하는 과정이 먼저 축적돼야 한다는 취지다.
중소 개발기업의 현장에서는 원료 연구와 제품 개발, 생산, 영업이 분리되지 않는다. 연구자가 직접 원물을 구하고 시제품을 만들며 공장과 함량을 조정한다. 외부 제조사에 원료를 공급할지 독자 브랜드에만 사용할지도 동시에 결정해야 한다.
독자 원료를 외부에 판매하면 규모를 키울 수 있지만 소량만 넣은 제품이 같은 이름으로 유통될 가능성이 있다. 공급을 막으면 원료의 희소성을 지킬 수 있어도 매출과 외부 검증이 제한된다. 최소 사용량과 원료 상표, 완제품 품질 기준, 광고 문구를 계약으로 관리해야 원료기업과 브랜드 사업을 함께 운영할 수 있다.
매스틱과 같은 난용성 천연 수지를 수용화하고 여러 제형에 적용하려는 개발도 같은 구간에 놓여 있다. 원료의 명성보다 공정 재현성과 실제 함량, 보조 물질, 장기 안정성, 대량생산 기록이 먼저 필요하다. 소규모 개발기업이 모든 시험과 생산설비, 해외 특허 비용을 단독으로 감당하기는 어렵다. 대학과 시험기관, ODM, 투자자, 해외 유통사가 역할을 나눠야 기술이 특정 기업의 홍보 문구를 넘어 거래 가능한 소재가 된다.
지역 자원은 연구소에서 끝나지 않아야 한다
국내 지방자치단체와 대학, 연구기관은 제주와 강원, 전남, 경북 등 지역 식물과 해양자원을 활용한 소재 연구를 이어왔다. 지역 원료는 산지 추적성과 생산자 연계, 지역 브랜드라는 장점을 갖는다.
원물 채취와 추출 연구만 반복하면 비슷한 식물 추출물이 늘어날 뿐이다. 국제 원료로 성장하려면 계약재배와 품종 관리, 수확 시기, 건조·보관시설, 지표성분, 잔류농약, 중금속, 미생물, 추출 수율을 하나의 체계로 묶어야 한다.
지역 연구기관은 원료를 발굴하고 대학은 작용 기전과 분석법을 개발할 수 있다. 스타트업은 공정과 특허를 맡고, 기존 원료기업은 대량생산과 해외 영업을 담당할 수 있다. ODM은 완제품 적용성과 고객 수요를 확인한다. 기관별 연구사업이 끝날 때마다 기술이 분리되면 같은 원물로 비슷한 연구가 반복되고 상업 공급망은 남지 않는다.
지역 원료의 이름을 제품 포장에 붙이는 일보다 현지 생산자에게 안정적인 구매량과 가격이 돌아가는 구조도 중요하다. 원료기업이 농가와 장기계약을 맺고 품질 기준을 제공하면 산지 편차를 줄일 수 있다. 지역에서 추출과 1차 가공까지 수행하면 원물 운송비와 변질 위험을 낮추고 부가가치도 산지에 남길 수 있다.
다음 성장기업을 가르는 숫자
2026년 7월 국내 원료기업 가운데 연 매출 1000억원을 넘어선 기업이 나왔고, 화장품 원료 부문에서 연간 500억원 이상을 올리는 기업과 해외 현지법인에서 두 자릿수 영업이익률을 기록한 기업도 확인된다. 국내 원료산업은 존재 여부를 논하는 단계를 지났다.
세계 시장에서 차지하는 위치는 매출 총액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해외 화장품 제조사가 한국 원료를 얼마나 반복 구매하는지, 독자 소재가 몇 개 국가의 처방에 들어갔는지, 원료 규격과 안전성 문서를 어느 범위까지 제공하는지, 고객사가 공급사를 바꾸기 위해 어느 정도의 재검증 비용을 부담해야 하는지가 협상력을 만든다.
브랜드 기업의 성장은 판매량과 소비자 인지도에서 빠르게 드러난다. 원료기업의 성장은 고객사의 전성분표와 비공개 처방 안에서 진행된다. 소비자가 원료기업의 이름을 알지 못해도 여러 브랜드의 세럼과 크림, 선크림에 같은 기술이 들어가면 매출은 반복된다.
대학과 출연연은 특허 건수보다 상업 생산으로 이어진 기술의 비율을 확인해야 한다. 정부 지원은 연구비 집행과 기업 선정에 머물지 않고 고객사 채택과 해외 원료 등록, 반복 주문까지 연결돼야 한다. 투자자는 유명한 식물 이름보다 수율과 규격, 고객 집중도, 해외 특허, 기술료를 봐야 한다.
국내 브랜드 수와 화장품 수출액은 이미 세계 상위권에 올라섰다. 원료산업의 성적표는 한국 기업이 개발한 소재를 해외 공장과 브랜드가 구매한 금액, 기술사용료, 장기 공급계약, 해외 규제 파일, 상업 생산 배치에 남는다. K-뷰티의 새로운 성장기업은 완제품을 많이 출시한 회사뿐 아니라 여러 완제품이 계속 사용해야 하는 원료와 공정을 가진 회사에서 나오고 있다.
후원=NH농협 302-1678-6497-21 위대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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